~아버지는 곧 나의 정체성~

… 나는 철부지였던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나와 함께 할머니 손을 잡고 고향을 떠나왔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동무들의 배웅을 받으며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입성했다. 서울은 적응하기 만만찮은 낯선 땅이었다. 고립무원의 서울에서 바닥 생활을 하면서 가난을 물려주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머니는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깊어갔다.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세상물정을 서서히 알아갔다. 그 즈음 아폴리네르의 시를 접하였고 아버지에 대한 모진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유언에 따라 고향 선영에 모셨다. 할머니 장례를 통해 장손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고향에서 연락이 왔다. 종중산으로 고속도로가 나기 때문에 아버지 산소를 이장해야 한단다. 결산작업으로 바빴지만 부장에게 허락을 받아 고향에 내려갔다. 평소 고향에 무심했던 탓인지 집안 어른들의 태도가 냉랭했다. 아버지 생전에 친구처럼 지낸 친척 할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고 한다. 수훈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방부의 수훈자 명부를 열람하고 거기에서 아버지 이름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화랑무공훈장 수훈자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국립현충원에 들어갈 자격이 있어서 바로 안장신청을 하고 그 사실을 급히 고향에 알렸다. 아버지 산소를 빼 가는 걸로 보고 장손 노릇을 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는 시도로 오해를 하였다. 아무나 국립현충원에 갈 수 없고 거기 안장되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설득했다. 어렵사리 집안의 협조를 끌어냈다./ 이장 차 고향으로 가는 길에 만감이 교차했다. 할머니 산소에 들러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찾아뵙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가출은 아버지 탓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아버지와 두 자식을 버리고 도주했다고 한다. 집안사람들의 도움으로 이장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유해를 수습해 화장을 했다. 아버지의 혼은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집으로 모셔왔다. 스페인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누나가 무사히 이장했는지 물어왔다. 나는 밤새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오해한데 대해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했다. 그 다음날 아버지 유골을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안치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응어리가 봄눈 녹듯 스러졌다. 마음이 개운하고 몸이 가벼웠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밀린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나는 결손가정 출신이다. 내가 겪고 있는 가난과 고생이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증오했다. 나의 정체성은 설 자리가 없다. 철이 들어 사고의 폭이 깊어지면서 증오심이 옅어지긴 했다. 아버지가 화랑무공훈장 수훈자인 걸 알고부터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아버지에게 죄가 있다면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불구가 됐다는 것이다. 뿌리 깊은 오해가 풀린다. 진실을 바로 알고 아버지와 화해한다.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자존감이 서고 기백이 치솟는다. 만사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용솟음친다. 나의 몸은 아버지로부터 유래한다. 고로, 나의 존재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한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