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오늘도 ‘고도’를 기다리며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가자” “갈 수 없어”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해” “맞아” “이제 무얼 하지?” “고도를 기다려야 해” “맞아”…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사뮈엘 베케트(Samueal Beckett)가 지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부조리극의 정수로 평가 받는다. 인간의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끝없는 기다림 속에 나타난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잘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극단 산울림에 의해 50년 이상 약 1천500회 공연되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등장인물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무려 50년 동안이나 ‘고도’라는 알지 못하는 존재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고도’가 맞는지도 모르고 약속 시간도, 장소도 모른다. 심지어는 그가 온다고 하기는 했는지, 왜 그를 기다리는지 조차도 모른 채 그저 기다릴 뿐이다. 고도는 나타나지 않고 그들은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대화만 반복할 뿐.

이 작품은 기승전결도 논리적 인과관계도 없다.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의 대화엔 아무런 맥락조차 없다. 마냥 ‘고도’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반복될 뿐이다. 물론 작가조차도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을 정도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시대와 사회환경이 달라져 오면서 나름대로의 의견으로 고도를 해석해냈다. 고도는 신(神)일 수도 있고, 자유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도가 뭔데?”라고 묻는다면 답은 없다. 통일일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검찰개혁일 수도, 정권교체일 수도 있겠다. 그럼 지금 당장은 어떨까. 아마 주말부터 접종을 시작하는 코로나19 백신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도’는 눈앞에 와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작가의 말처럼 희극이자 비극인 삶의 현장이다. 우리는 지난 1년간 ‘고도’를 기다리며 일상을 반납해왔다. 전선(戰線)이 따로 없는 곳에서 온 국민이 전쟁을 치르며 언제 일상을 회복할지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1년을 보냈다.

드디어 26일 오전부터 아스트라제네카를 시작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백신 공동구매 국제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받게 되는 화이자의 백신 5만8천500명 분 역시 이번 주부터 접종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백신접종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1호 접종을 누가 할 건가를 두고서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문 대통령 1호 접종을 주장하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이냐”며 발끈했다. 이 와중에 중심을 잡은 건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었다. “백신 접종을 맞으시는 모든 국민들은 누구가 되든 실험 대상이 아니다”라며 “그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못 박았다. 사실 백신접종의 정치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국민불안을 증폭시킬 우려가 커서다. 왜 백신마저 정치적 소재가 돼야 하나.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겐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 습관화됐다. 그러면서도 “습관은 우리의 이성을 무디게 하지”라고 말한다. 맞다. 현실에서도 그들은 습관처럼 백신접종 이슈마저 정치화시켜버렸다. 그래서 그네들의 이성마저 무뎌진 것일 게다. 아니면 그들이 기다렸던 고도는 애초부터 백신접종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권력일까?

정작 고도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이다. 따뜻해진 봄 날씨 답지 않게 황량해져 버린 도심…. 건물마다 늘어만 가는 임대 현수막…. 커져만 가는 실직의 늪…. 그러나 언제 어떻게 올지도 모르면서 마냥 “고도를 기다려야 해”를 되뇌고만 있는 이들을 살뜰하게 보듬는 정치인은 없다.

작품 속에서는 해가 질 무렵 한 소년이 나타난다. 그는 전해준다. 고도가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고. 그렇게 날이 바뀌면 내일은 또 오늘과 똑같은 반복이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기다리면 내일은 고도가 꼭 온다고 위로해주는 소년마저 없어서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