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캠프, 8살 소녀 메르히는/참치캔 의족을 달고 해변을 걷는다//날이 선 지느러미를 단/파도들이 몰려온다//가만히 멈춰 선 채 섬이 된 소녀는/몰려다니는 물고기의 행로를 되새긴다//해체된 참치캔들이/떠다니는 바닷가//의족이 걸어가는 발자국 쓰라리다/파도에 다리들이 휩쓸려오는 난민캠프//멈춰 선 소녀는 끝내/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시조집 「참치캔 의족」 (책만드는집, 2020)

정지윤 시인은 경기 용인 출생으로 2014년 창비어린이 신인상 동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동시집 ‘어쩌면 정말 새일지도 몰라요’와 시조집 ‘참치캔 의족’ 이 있다.

‘참치캔 의족’은 참으로 아픈 시편이다. 시리아 난민캠프의 8살 소녀 메르히는 참치캔 의족을 달고 해변을 걷고 있다. 날이 선 지느러미를 단 파도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날이 선 지느러미를 단 파도, 라는 구절에서 시인의 시적 기량을 읽는다. 아픔에서 배어나온 개성적인 이미지 구현이 돋보인다. 이러한 미적 자질로 직조된 구절은 시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다음으로 가만히 멈춰 선 채 섬이 된 소녀는 몰려다니는 물고기의 행로를 되새기고 있다. 소녀는 일순간 섬이 됐고, 물고기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바다 곳곳을 마음껏 헤엄쳐 다닌다. 그곳은 해체된 참치캔들이 떠다니는 바닷가다. 화자가 봤을 때 의족이 걸어가는 발자국은 쓰라린데 파도에 다리들이 휩쓸려오는 난민캠프에 멈춰 선 소녀는 끝내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이 소녀를 몹시 힘들게 한다.

시리아 내전은 시리아에서 2011년 4월부터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를 축출하려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이다. 중동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 연장선상의 일환이다. 특히 시리아는 내전으로 인해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가는 난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요르단으로 피난을 간 시리아 난민 중 딸을 가진 부모들은 전쟁 중 딸이 폭력에 노출될 위험을 막기 위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결혼을 시킨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불행을 낳고 있다. AP통신과 인터뷰를 한 16세의 시리아 난민 소녀는 부모의 권유로 조혼을 했으나,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했음을 밝혔다. 10대에 결혼한 시리아 소녀들은 이와 같은 일들을 빈번하게 겪고 있다.

‘참치캔 의족’은 국제적인 시각으로 지구촌의 비극을 노래하고 있다. 시에서 드러나는 정황보다 더 극심한 일들이 시리아 곳곳에서 연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국제기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단시조 ‘봄의 문’을 통해 봄이 오는 길이 험난함을 일깨우고 있다. 느리게 날아오는 나비들이 낮아지는 것을 주시하면서 날개가 밟고 가는 허공의 길을 바라본다. 날개가 밟고 가는 허공의 길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양 어깨에 달린 날개가 허공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결구인 종장에서 화자는 혼자 중얼거리듯 얼마나 견고한 자물쇠에 잠겼었는지 알게 된다, 라고 진술한다. 겨울이라는 견고한 자물쇠에 단단히 잠겨 있던 것을 푸는 일이, 풀리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이러한 종장을 통해 명징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봄의 문’은 예사로운 작품이 아니다. 새로운 발화다. 개성적인 의미 부여다.

우리 모두 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새날을 맞을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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