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집이 여러 채 있다/ 그중에 으뜸은/ 우주 한 모퉁이 분양받은 몸집// 제일 꼭대기 층엔 골방 둘/ 그 아래층은/ 초능력 통신망 닥지닥지 붙은 방 다섯/ 거기서 숨 한번 길게 들이 쉬고 내려서면/ 마주 보고 마음 나누는 방이 둘/ 그 아래 밥집 한 채 또 그 아래 똥집/ 맨 아래층엔 몸종 거처하는 행랑채 둘// 휘, 돌아보니/ 여태 내가 줄곧 거처한 곳은/ 오감 가득 채워진 빈방// 그 사이/ 아랫목 구둘 꽉 막혔다// 설마, 장작불 활활 지펴대면/ 막힌 굴뚝 펑 뚫리겠지, 싶어/ 행랑채 뒤로 돌아들어가/ 굴뚝 쿡쿡 들쑤시며/ 간신히 고개 밀어 넣고/ 슥, 올려다보니/ 방마다 주인 노릇하던 놈들/ 뿔뿔이 다 도망치고,/ 없다

「대구문협대표작선집Ⅱ」 (대구문인협회, 2013)

모든 집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집은 부모님에게 받은 몸집이다. 몸집은 비록 광활한 우주 중에서 지구라는 티끌 위에 존재하는 미미한 점 하나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집이다. 어쩌면 몸집은 내 집이지만 내 집이 아닌 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은혜로 생겨나 사랑으로 키운 집이기에 마음대로 상하게 하거나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신체와 머리카락과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몸집의 구조를 살펴보면 너무나 절묘해 신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꼭대기 층엔 큰골, 작은골 등 골방 둘, 그 아래층엔 두 눈, 두 귀, 코 등 소통을 담당하는 방 다섯, 목 아래쪽엔 심방 둘, 그 아래로 위장과 막장, 맨 아래층엔 종처럼 매달려 흔들리는 부랄 두 쪽, 기타 등등. 어느 곳이든지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며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초능력 통신망을 통해 감지한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해 꼭대기 층에서 적정한 판단을 내리면 손과 발을 위시한 각 기관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어느 날 내가 기거하는 곳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닫는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오감을 통해 빛, 소리, 냄새, 맛, 느낌 등 오경에 집착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 등 오욕에 탐닉한 세월이 공허할 뿐이다. 실체도 없는 것들을 쫓아다니며 게걸스럽게 채워 넣은 삶이 무상하다. 본 데 없는 것을, 그게 전부인양 탐한 어리석음이 회한으로 남는다.

허상에 사로잡혀 뛰어다니는 사이 몸속 각 기관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굴뚝이 막힌 탓인지 영양분 공급이 더디고 피가 원활히 돌지 않는다. 신진대사가 다시 활발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불을 지피고 굴뚝을 뚫듯이 장 청소도 하고 핏줄도 뚫어본다. 구석구석 살펴보고 돌아보니 제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던 놈들이, 기력이 다했든지 아니면 지쳤든지, 정신 줄을 놓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각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고 때론 고장이 난다. 종국엔 그곳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모를까마는 코앞에 닥치고 눈으로 봐야 비로소 깨친다. 몸이 마음 같지 않아 말을 듣지 않게 된 다음에야 그 허상이 보인다. 죽기 살기로 모은 것들은 공허하고, 마음의 방은 텅 비어 있다. 집은 우주의 모퉁이에 미미하지만 마음은 우주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마음을 채운 사람이 진정한 부자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