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험한 세상의 세 얼간이 ~

… 직행버스 정류장에 내려 두 시간을 걸어가야 박호네 집이다. 완행버스를 타고가면 20분 거리인데 박호는 맹추위에 굳이 걸어가자고 고집이다. 종석과 달문은 엄동설한에 도저히 못 걸어간다고 버텼지만 박호는 어림도 없다. 박호는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지는 바람에 ‘파박선생’이란 별명을 얻었다. ‘깨진 박’이란 뜻이다. 결국 세 사람은 시골길을 걸어갔다. 삭풍이 살을 에는 듯 불었고 눈보라가 얼굴을 때렸다. 씨암탉 고아놨다는 말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워 진 후에야 마을에 도착했다. 두 친구는 박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박호는 대학합격통지서와 등록금고지서를 아버지에게 주면서 두 친구를 함께 합격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석과 달문은 앞으로도 함께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둥 각본대로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는 누런 돈 봉투를 아들 박호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닭백숙을 들고 들어왔다. 박호는 입맛이 없는지 닭다리 하나만 뜯었지만 두 친구는 배 터지도록 포식했다./ 박호와 종석, 달문은 재수 끝에 대학입시에 또 낙방했다. 종석과 달문 두 사람은 박호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는데 영장까지 나온 상태다. 그즈음 대학에 합격한 친구가 놀러와 합격통지서를 보여주면서 으스대었다. 그걸 본 박호는 맹랑한 아이디어를 냈다. 종석과 달문은 조연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박호는 시골집에 장거리전화를 걸어 후보 1번으로 걸렸는데 한명이 등록을 하지 않아 합격하였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종석이 합격통지서와 등록금고지서를 위조했다. 두 친구는 박호의 합격을 증명하기위해 시골집에 동행하였다. 계획은 성사되었다. 그 후, 그 소문을 들은 친구가 찾아와 그 일을 벤치마킹했다. 그 친구는 시집 출간으로 돈을 탕진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박호는 등록금으로 산동네에 달세 방을 얻어 ‘고해산방’이란 이름을 붙이고 두 친구와 함께 기거했다. 박호가 밥을 하면 두 친구는 인근 밭에서 반찬을 채집해왔다. 비포장 길가에 ‘고해산방’이란 헌책방도 차리고 세 사람의 헌책을 진열했다. 박호는 주인집 부부의 부부싸움을 중재하여 떡고물을 얻어먹었고 종석은 능청스런 말솜씨로 외상술을 마셨다. 달문은 빈들거리며 빈대처럼 붙어살았다. 양식이 떨어지자 주인집 부엌에서 음식을 훔쳐와 배를 채우기도 했다. 그해 늦가을 두 친구는 군에 입대했고, 박호는 자동차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세월이 흘러 박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오랜만에 세 사람이 상가에서 만났다. 영정을 올려다보며 종석이 말했다. 대학도 못 가고 문서를 위조하긴 했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있는 거 맞제? 그 후, 박호는 그의 별명, 파박처럼 파도가 보이는 부산에 가서 살았다.…

우리 사회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학벌이 중요한 스펙이다. 전답과 소를 팔아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했다. 그 덕분에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가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학벌주의와 사농공상에 치여 자신의 적성을 살리지 못하고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다. 장기를 발휘했으면 대성했을 사람들이 대학 문을 두드리다가 좌절한 채 소중한 인생을 허송한 경우다. 세 사람은 불합리한 세상을 맘껏 조롱한다. 그들의 반항과 대듦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그 무기력함이 오히려 가슴을 저민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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