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잊는 데에 한 평생이 걸렸다/뜨거웠던 몸과 다리 싸늘히 식고나면/연인의 정강이뼈로 만들어서 부는 피리//그대가 오신다는 바람결에 꽃은 핀다/외롭게 걸어왔던 이번 생의 부은 발등/그리운 이름 부르며 무릎 꿇고 앉은 밤//온 생을 기다려온 다리뼈에 구멍 내어/절뚝이며 걷듯이 외로움을 채우면/쓸쓸한 입술 속에서 다시 피는 당신 이름

「오늘의 시조」 (2020, 제14호)

용창선 시인은 전남 완도 출생으로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세한도를 읽다’와 연구서로 ‘윤선도의 한시 연구’ 등이 있다.

께냐는 안데스 인디언들의 피리로 죽은 연인의 정강이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곡진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연이다. 한 사람을 잊는 데에 한 평생이 걸렸다, 라고 첫줄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만큼 잊는다는 일은 지난한 것이다. 뜨거웠던 몸과 다리가 싸늘히 식고나면 연인의 정강이뼈로 만들어서 부는 피리인 께냐는 그런 까닭에 그 소리가 몹시도 애절하다. 하늘도 울린다. 그대가 오신다는 바람결에 꽃은 피고 외롭게 걸어왔던 이번 생의 부은 발등으로 그리운 이름을 부르며 무릎 꿇고 앉은 밤은 남은 이의 몫이다. 그런 밤에 화자는 께냐를 불 것이다. 그 절절한 소리를 듣고 떠난 그가 불현듯 나타날지도 모른다. 감은 눈언저리로 다가온 사랑하는 이가 눈물 머금고 섰을지도 모른다. 진실로 부르는 소리가 하도나 애절해서 죽은 이도 다시 살아 돌아올 만하다. 그래서 온 생을 기다려온 다리뼈에 구멍 내어 절뚝이며 걷듯이 외로움을 채우면 쓸쓸한 입술 속에서 다시 피는 당신 이름은 영원해 사랑의 역사는 길이 이 땅에 남아서 온 천지를 바람처럼 떠돌 것이다. 이처럼 그지없이 아픈 사랑의 노래가 ‘께냐’다. 사연 자체로만도 울림을 주는데 미학적 직조로 말미암아 그 울림은 더욱 심화됐다.

그는 ‘9회 말 투아웃 2사 만루’라는 시조에서 다른 각도로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직구로만 승부하던 눈빛은 무뎌졌고 방어율이 낮았던 청춘도 시들었다, 라면서 가슴의 흉터 같은 실밥을 꽉 쥐고 서 있는 한 투수의 모습을 그린다. 이어서 커브처럼 휘어지는 골목길의 불안과 포크볼로 떨어지는 목덜미의 빗방울이 외로움 쌓인 세상에 내던져져 있었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골목길의 불안을 커브처럼 휘어지는, 이라는 수식을 통해 삶의 문제를 표면화하고, 목덜미의 빗방울을 포크볼로 떨어지는, 이라는 구절이 꾸며줌으로써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는 대목을 특히 눈여겨볼 점이다. 더불어 이 일들이 고독한 세상에 내던져져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값진 것이다. 이제 내 손을 떠난 공이 타석으로 날아가고 있다. 화살을 떠나보낸 활시위가 떠는 순간이다. 그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가고 경기는 역전승으로 종료된다. 시의 화자인 투수는 패배한다. 인생은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야구계에 널리 퍼져있는 것은 이따금 그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역전이 현실화되는 경우를 보게 되기 때문일 터다.

그는 또 단시조 ‘월명리’에서 눈물어린 서정의 세계를 보인다. 닳아진 그대 뼈와 내 울음이 닮았다, 라면서 외로운 영혼에만 들어와 울린다는 월명사 피리소리에 수선화가 피는 밤을 노래하고 있다. ‘께냐’와 더불어 심금을 울린다. 완도에서 태어난 시인 용창선은 이렇듯 정도리 바닷가 몽돌 같은 시심으로 시조밭을 땀 흘려 일구고 있어 든든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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