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보수의 정체성을 살릴 기회였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의 관계를 떠나서라도 ‘가덕도신공항 지지’는 국민의힘이 갈 길이 아니다. 역발상이 정말 아쉬웠다. 국민혈세로 부산 표심을 사려는 더불어민주당의 꼼수에 맞서 전체 국민여론 결집에 나서야 했다.

의석 수에서 절대적으로 밀리는 야당이 현실론을 앞세우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에서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어정쩡한 자세로 눈치만 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막판에 떠밀리다시피 가덕도신공항 지지 입장을 밝혔다. 오는 4월 부산시장 보선을 겨냥한 민주당 포퓰리즘의 정당성을 인정해준 꼴이 된 것이다.

◆가덕도신공항, 정체성 살릴 기회인데

부산·서울시장 보선은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라고 한다. 시장 선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전초전은 전초전일 뿐이다. 본선이 남아 있다. 여야 모두 내년 대선 승리가 최종 목표 아닌가. 국민의힘이 가덕도 문제에서 정도를 택하지 않은 것은 대선 국면에서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못된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국민의힘이 그 짝이다. 민주당 욕하면서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 편법과 꼼수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별 반향이 없다. 정체성에 흠집만 간다.

민주당의 가덕도 밀어붙이기는 모든 면에서 명분이 없다. 가덕도신공항은 ‘지뢰밭’이다. 천문학적 예산의 비효율성, 예타면제를 내세운 절차상 폭거, 국책사업 공신력 실추 등 곳곳에 폭발성 강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영남권 5개 시도 합의 파기, 대구·경북과 부산 간 지역감정 조장 등도 향후 국정 운영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가덕도 사태를 통해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다수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올바른 길을 가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길을 외면했다.

지난 2~4일 실시된 갤럽 전국 여론조사를 보면 가덕도 반대가 37%로 가장 많았다. 찬성은 33%, 모름/응답거절은 30%였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찬 31%, 반 51%)뿐 아니라 대전/세종/충청(찬 23%, 반 39%), 인천/경기(찬 29%, 반 39%), 서울(찬 32%, 반 38%) 등에서도 반대여론이 높았다.

찬성은 부산/울산/경남(찬 49%, 반 30%)과 광주/전라(찬 40%, 반 32%)에서만 많았다. 부산·경남 내에서도 분위기는 달랐다. 부산은 찬성 61%, 반대 20%였지만 경남은 찬반이 39%로 같았다.

연령별로는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반대가 많았다. 명분없는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수 있는 혜안이 없었다. 상대가 제기한 이슈를 되받아쳐 승부를 거는 결기도 없었다. 집권 여당의 숱한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민생정당, 대안정당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가덕도 사태는 터무니 없는 결정을 한 민주당을 밀어붙일 기회였다. 국민의힘은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반대 당론을 정하고 여론을 선도해 갈 수 있었다. 정공법을 택했으면 향후 대여 투쟁 행보도 힘을 받았을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결정 내려

그러나 대구-부산 갈라치기를 목적으로 민주당이 친 ‘가덕도신공항’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대구·경북 의원을 중심으로 뒤늦게 소리를 내고 있으나 ‘버스 지나간 뒤 손들기’ 꼴이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눈앞의 작은 이익만 기웃거리는 야당은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국민의힘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 비전이 없는 때문인가, 당의 확장성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 결여 때문인가. 보수정당의 가치 훼손이 뼈 아프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보선을 겨냥한 가덕도신공항 지지는 “한국정치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하는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 두고두고 한국 정치사의 수치로 남을 것이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오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미래가 삼류정치의 희생양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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