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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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봄날처럼 기온이 풀렸다. 움트는 나뭇가지에서 까치들이 노래한다. 멋진 인생이라고.

문을 여니 자그마한 어항, 백열등 불빛 아래 형광 줄무늬 물고기 네온 테트라가 떼 지어 몰려다닌다. 술을 사랑하는 이는 애주가, 담배는 애연가, 관상어를 사랑하는 이는 애어가라고 부른다고 하던가. 네온 테트라는 정말 군무의 대가다. 수백 마리가 먹이를 조금 주기만 해도 즉시 대열을 맞춰 다니며 먹는 광경, 그야말로 예술이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 사춘기 증상을 보이는 아이와 자주 다투던 가족이 성조숙증 검사를 위해 방문했다. 아이는 잔뜩 짜증 난 얼굴, 부모는 화를 억지로 누르는 표정이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당황해 아이가 혹시 물고기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싶어 진료실 안 어항을 가리켰다. 그것을 발견한 아이는 활짝 핀 얼굴로 그곳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구피다 구피” 라고 하더니 “이 수초, 살아있는 거예요”, “고기밥은 얼마나 주나요?” 갑자기 터진 아이의 질문 세례에 그의 부모는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다. 집에선 두문불출, 묻는 말엔 대답도 하지 않으며 매사 무관심이던 아이가 저렇게 스스로 질문해대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진찰이나 검사는 차치하고라도 아들이 저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한다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어린아이가 젊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을 찾은 적이 있다. 아이가 물었다. “아빠 이게 뭐야?”그러자 아빠가 확실한 어조로 대답한다. “생선이야” 그러자 아이는 “아빠, 그럼 여기서 낚시하면 되겠네? 아침마다 생선 잡으러 나가지 말고?” 아이의 날카로운 공격에 아빠는 옆에 서 있던 엄마의 눈치를 이리저리 보면서 “으 으 응, 그래도 되겠~네~”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애어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안에는 늘 커다란 어항이 거실에 자리를 차지했다. 그 모습이 익숙하다 보니 병원 진료실에도 늘 작은 물고기 어항을 두고 아이들을 진찰했다. 그들에게 살아있는 생물체를 보면서 병원에서 느끼는 마음의 불안이나 걱정을 조금 덜어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들은 대개 물고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수초를 만지고 물이 움직이는 원리가 무엇인지 묻기도 하면서 신기해했다. 집에 어항 갖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흔드는 부모가 많았다. 그것은 어쩌면 선택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이에게 물고기를 길러보면서 그 뒤처리를 하는 과정을 즐겁게 동참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귀찮은 것은 아예 하지 않고 감상하려면 수족관이나 대형 마트에 전시된 어항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소한 것도 선택의 문제일 터이다.

요즈음 들어 변화가 많다. 점심시간 함께 하던 동료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아픈가 싶어서 소식을 물어보니 ‘은 따’, ‘스 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따돌림, 은근한 따돌림을 즐긴다는 이야기, 올해의 트렌드라고 하는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를 하고 있다니. 스스로 은둔해 자기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SNS가 활발한 시대에 두려운 것이 바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고 하지 않던가. 잊히는 것이 두려워 남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자주 다른 이들의 블로그에 접속해 댓글을 적으며 살고 있다는 이들이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해 서로 간에 거리 두기 한 지도 벌써 해가 넘어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에도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도 있을 터이니.

거리 두기 하면서 지내는 이런 시기에 관상어 애호가, ‘애(愛)어(魚)가(家)’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애어가는 공용어나 표준말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관상어 애호가들이 자신을 부르는 친근한 말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애어가라면 어항의 물도 수돗물로 그냥 갈아주는 것이 아니라 받아서 수 시간에서 며칠간 놔뒀다가 묵은 물로 만들어서 사용한다. 수돗물로 바로 물갈이하게 되면 수돗물 속에 있는 염소 성분에 의해 물고기가 쇼크를 받을 수 있어서다. 이 쇼크가 누적되는 것으로 알려져 이를 막기 위해 물을 받아두고 염소를 증발시킨 물인 묵은 물로 갈아줘야 한다. 무엇을 사랑하고 안하고는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일단 선택하게 되면 그를 위해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여서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으랴. 인생은 우연이 감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황홀한 색조로 잔뜩 뽐내며 흥겹게 몰려다니는 네온 테트라를 보며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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