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어김없이 새해가 시작됐다. 지독하게도 우울했고 때론 지독하게도 분노하게 만들었던 2020년이 슬그머니 지났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새해다.

무엇보다 2020년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우울한 한 해였다. 코로나19로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한 1년을 보냈다. 지난 연말 각 언론사들의 2020년 국내외 10대 뉴스도 모두 코로나19가 첫 번째를 차지했다. 그 여파로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사회 각 분야에서도 악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타협 없이 나만, 내 편만, 우리 진영만 옳다고 한 정치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다 줬다.

출발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된 4·15 총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63석과 함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17석을 합해 총 180석을 확보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비례정당을 합쳐 103석이었다.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게 된 민주당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독식을 시작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이라는 합법적 방법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 강제 중단, 공수처장 후보 추천 등 입법독주를 해왔다. 거대 여당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잘못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극심했다. 이는 여야 구분없이 지지층들과만 소통하는 문제를 낳았다. 대화 자체가 안되다보니 ‘정치는 포용과 타협’이라는 원칙마저 무시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한 해였다.

한국사회를 잠시 돌아보자.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실물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지 않은가. 자영업자들은 죽어나가고 있는 판에 정치판에서는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투쟁만 보인다. 보수와 진보 극단의 양 진영으로 갈라서서 이념논쟁만 벌이고 있다. 자기들이 누리는 것이 원칙을 저버린 특혜인지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특권의식에 젖어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잘못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대화는 없어진 지 오래다. 내편네편을 갈라 힘으로만 해결하려 든다. 지난해에 순리대로 해결된 현안이 어디 있던가.

상식이 통하려면 대화가 돼야 한다. 정치의 역할도 대립, 대결의 국면을 소통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과정 아닌가. 그런데도 막말을 통해 서로 갈등만 조성하고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지난해는 대화가 실종됐고 당연히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여당의 독주와 야당의 무기력함으로 기억될 한 해였을 뿐이다. 새해가 됐다고 해서 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갈등과 분열이 더 심해질 가능성마저 있다.

그래도 어쨌든 2021년 ‘소의 해’는 떠올랐다. 새 해가 되면 으레 그렇듯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지독하게도 우울했고 실망하게 만들었던 지난해였기에 더욱 그렇다. 올해는 상식이 통하는 한 해가 될 거란 기대가 있어서 더욱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희망의 시작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쇠귀에 경 읽기란 뜻의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되어서는 서로 대립과 갈등을 키울 뿐이다. 우리 진영은 무조건 선(善)이고 상대 진영은 무조건 악(惡)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니 서로를 향해 우둔하다며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줘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탄만 해서야 되겠는가.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 지방에서 나는 소를 벽창우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 나는 소는 크고 억세어 고집 센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서로를 향해 벽창우라고 몰아붙이기만 해서는 올해 역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게 지나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소의 뿔 모양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첫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고 했다. 올해는 여당과 야당이 힘을 합치는 황소걸음을, 그래서 내편네편이 없는 국민들이 코로나19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황소걸음을 함께 걸어가길 기대한다. 모두가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걸어서 만리를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철학을 배웠으면 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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