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큰 판이 벌어졌다…예타에 울고 웃던 대구시, 기회를 잡다

올해 대구 SOC 예산 역대 최대, SOC 경기 부양 가능할까
무력화된 예타, 지역 숙원사업 해결할 기회로 작용할 듯
정치 논리 개입된 예타 면제, 지역 정치권 얻을 것은 얻어내야

올해 완공이 예상되는 서대구 KTX역의 현재 모습. 서대구 KTX역은 2019년 예타 면제 사업으로 지정된 대구산업선의 출발점으로 물류비용 절감 및 지역산업 경쟁력 향상과 도시균형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축년 하얀 소의 해를 맞아 대구는 소처럼 땅을 갈아 도로와 철도를 놓는 데 매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대구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사상 최대 규모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올해 대구 SOC 관련 예산은 총 5천486억 원으로 지난해 예산(2천675억 원)의 두 배에 달한다. 역대 최고액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복지 관련 예산의 증가로 시급하지 않은 SOC 예산의 경우 상당수 삭감이 예상됐지만 예상외의 결과다.

그동안 SOC 예산은 복지 관련 예산과는 반비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국가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식은 최근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정부는 ‘슈퍼 예산’ 집행을 통해 SOC 관련 예산을 오히려 늘리는 마법을 부렸다. 끝없는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을 ‘SOC 경기 부양’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SOC 예산은 향후 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정치권이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요건 완화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최근 5년(2017~2021)간 대구시 연도별 국비확보 현황.
◆사실상 무력화된 예타, 대구엔 ‘득’이다

예타 제도는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평가하기 위한 제도이다.

혹시라도 있을 ‘묻지마식 국책사업’을 견제하는 일차 방어선인 셈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도입됐다.

예타 제도는 지난해 도입 21년 만에 전면 개편됐다. SOC 사업의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체계를 이원화해 비수도권은 경제성 평가비중을 낮추고 지역균형발전 평가비중을 높여 예타 문턱을 낮추기로 한 것이 주요 골자이다. 조사대상 사업비도 기존 500억 원에서 1천억 원으로 늘었다.

정부는 그간 수도권, 비수도권 구분 없이 사업마다 경제성 35~50%, 정책성 25~40%, 지역균형발전 25~35% 비중으로 일괄 평가해 왔다. 개편안에서는 비수도권은 지역균형발전 평가비중을 30~40%로 5%포인트 높이고, 경제성 평가비중은 30~45%로 낮췄다. 수도권에 비해 도로 철도 등의 수요가 적어 경제성이 떨어져도 지역균형발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통과할 수 있도록 개편한 셈이다.

대구 등 지방 광역시가 주요 수혜 대상으로 꼽힌다. 비수도권이면서도 다른 지방 도시에 비해 덜 낙후돼 있어 지역균형발전 평가에서 감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엑스코선이 완화된 예타 제도의 지역 첫 수혜자가 됐다. 대구 동·북부지역을 가로지르는 엑스코선은 지난달 29일 예타를 통과해 사업추진이 확정됐다. 엑스코선은 경제성 부분에서 B/C(비용 대비 편익분석) 수치 0.87을 받았다. 예년 같으면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지역균형발전에서 가점을 받으며 종합평가지표(AHP) 0.503으로 기준을 통과했다.

대구시는 2015년 이후 주요 사업들이 예타의 문턱을 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2015년 ‘CT 공연플렉스 파크 조성 사업’이 예타에서 최종 탈락했고, ‘도시철도 3호선 종점(범물동)~혁신도시 연장 계획’은 낮은 경제성으로 보류됐다.

이밖에도 ‘달빛내륙철도’, ‘도시철도 1호선 대구대 연장안’ 등 지역의 숱한 대형 SOC 사업들이 예타 본 무대는 올라보지도 못하고 예타조사 사업 대상 단계에서 떨어졌다.

대구시에 따르면 2016년 2건, 2017년 1건, 2018년 2건으로 근근이 맥을 이어오던 지역 예타사업 신청은 2019년과 지난해에는 씨가 말랐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애초에 경제성 검증에 자신이 없는 관련 부처들이 예타사업 신청을 아예 포기해 버린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의 최근 변화된 기조는 예타의 늪에 빠진 지역 숙원사업들을 바라만 봐야 했던 대구시에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가 지난달 14일 ‘예타사업기획단’을 통해 대형 SOC 사업 발굴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대구의 예타사업 신청대상으로는 △초실감 가상휴먼의료 △스마트 워터시스템 △스마트 농기계산업 육성 △확장현실 기반 디지털 초융합 △매천대교~이현삼거리 도로건설 △범안삼거리~황금고가교 도로건설 △5G 라이브 쉐어 콘텐츠 산업 육성 7개 사업이 물망에 올랐다. 대구시는 이중 3개 사업을 선정해 올해 예타에 도전할 예정이다.

보류됐던 도시철도 3호선 혁신도시 연장안도 경제성 부분을 보완해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대구산업선의 종점인 대구 국가산업단지 전경. 대구산업선은 서구 서대구 KTX역에서 달성군 국가산업단지까지 34.2㎞ 구간을 불과 38분 만에 돌파한다.
◆정치는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든다…예타 면제

‘예타 면제’는 지역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 대응 등을 위해 필요한 사업에 한해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정치적 외풍에 항상 휘둘려야 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 예타 면제사업이 급증한 것은 2019년 ‘국가균형발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부터다.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지역별 예타 면제사업 발굴을 지시하자 기재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사업 32건 가운데 23건(24조1천억 원 규모)에 대한 예타를 일괄 면제했다.

이중 대구지역에서 예타 면제 수혜를 입은 사업은 대구산업선이다.

대구산업선은 서대구 고속철도역에서 대구 국가산업단지를 잇는 일반철도다. 총 34.2㎞ 구간으로 공사비 1조2천880억 원이 전액 국비 지원되며 2027년 완공 목표다. 2016년부터 두 차례나 예타 탈락의 아픔을 맛봤던 대구산업선은 2019년 예타를 면제받으며 극적으로 부활했다.

이처럼 경제성이 부족했던 사업들이 마지막 카드로 예타 면제를 노린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결국 구체적인 수치의 증명이 어려워 정치논리가 개입되기 쉽다.

예타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선거철을 앞두고 ‘선거용 사업’이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성보다는 표심에 따라 무분별한 인프라 공약이 쏟아지고, 그로 인해 다시 난개발 우려만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구경북연구원 김대철 공공투자평가센터장은 “예타 면제 조건의 규정을 좀 더 구체화하거나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의 기조는 불요불급한 사업의 증가가 필연적”이라면서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식’ 토건 사업은 지방비 매칭 사업이 대부분이다. 지방재정 건전성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SOC 예산 한계론도 정치적 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타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정치는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든다. 가덕도 신공항이 5년 만에 부활한 것처럼 말이다.

대구경북연구원 한근수 미래전략연구실장은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SOC 관련 예산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예타가 면제됐다고 그만큼 예산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 다른 사업 예산에서 빼서 메꾸는 방식”이라면서 “대구산업선이 예타 면제됐지만, 이는 결국 다른 숙원사업들이 예타 면제될 확률이 줄어든 것이다. 만약 또 다시 예타 면제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행정이 아닌 정치적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2028년 완공 목표로 군위 소보·의성 비안면 일원에 들어서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감도.
◆판이 깔렸으면 제대로 놀아야 후회가 없다

이러한 비판에도 정부의 SOC 부양책은 지역사회에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적 프레임만 잘 짜면 그동안 경제성의 논리에 함몰돼 밀려 있던 지역 숙원사업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적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역시 지역민들과 정치권의 규탄 분위기와는 달리 통합신공항 관련 SOC 사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가덕도 신공항 예타 면제의 반대급부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민간공항 부분과 관련 SOC 사업들의 예타 면제가 거론되고 있어서다.

통합신공항 접근성 개선안으로 나온 SOC 확충안은 △4차 순환도로 △조야~동명 광역도로 △중앙고속도로 확장 △동군위IC~신공항도로 △북구미IC~군위JC 고속도로 △성주~대구고속도로 △경북도청~신공항도로 △서대구~의성 철도 △김천~의성 철도 △중앙선(도담~영천) 복선화 등 10개에 달한다.

이중 이미 완공을 앞둔 4차 순환도로와 2019년 예타를 통과한 조야~동명 광역도로 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사업은 모두 경제성 부분 입증이 어려워 예타 통과가 사실상 불가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남대 윤대식 교수(도시공학과)는 “경제성 논리로만 접근하면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형 국책사업, 예를 들어 통합신공항 관련 사업들은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동네 공항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정부의 현재 기조는 오히려 지방정부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래의 대구·경북 건설을 위해 예타의 굴레에서 벗어난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SOC 확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 주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도시철도 3호선~혁신도시 연결안은 5년째 예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신서혁신도시 전경.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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