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팔뚝에 새겨진 마음의 상처

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이동은

리즈셩형외과 원장

송구영신을 기원하는 2020년의 마지막 날, 코로나19 3차 확산에다 옷깃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은 한 해를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좀처럼 온기를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든 동성로 거리가 한층 더 적막해 보이던 날 낯익은 젊은 여성이 진료실을 찾아왔다. 지난 10월에 수술을 받고 열심히 치료 중인 환자다.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발그레한 볼에 부끄러운 표정으로, 단추를 꼭 채운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며 이런 흉터도 좋아질 수 있겠느냐며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힘들게 보냈던 것인지, 가로 세로로 하얗게 새겨진 흉터였다.

젊은 시절, 손목이나 다른 부위에 상처를 내고는 그 아픔을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던 방황의 흔적이라 짐작된다.

손목에 생긴 상처만큼 마음속에도 패인 흔적이 남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갔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서 보니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실에서 만나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고 속 깊은 말을 하는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는 멀었다는 자조감을 느끼곤 한다. 어릴 적부터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어보고 이겨낸 사람의 내공을 제대로 느낀 셈이다.

그 마음을 이해해 주고 뒷받침해주기 위해서라도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가 된 셈이다.

손목과 팔뚝의 상처를 자세히 봤다. 몇 군데는 실처럼 보이는 흉터가 있고, 한두 곳은 깊은 상처가 되면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지, 벌어져 있는 모습이 보기에도 흉했다.

숨기고 싶은 흔적이고 타임머신이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뿐이겠지만, 한 번 생긴 상처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결국 현실적인 목표를 만들고 여기에 기대치를 맞춰야 후회를 덜 하게 될테니.

흉하게 벌어져 있는 흉터는 제거하고 다시 실선처럼 봉합하고 나머지 흉터는 주위 피부와 비슷한 모양이 될 수 있을 때까지 레이저 치료를 하기로 했다.

마취를 하고, 뽀얀 살에 흉하게 벌어진 흉터를 꼼꼼하게 잘라내고 속살부터 한땀 한땀 봉합했다. 행여 손을 움직이다가 다시 벌어질까,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반깁스를 만들어 붙였다.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흉터가 치유되는 기간 동안 움직임을 줄여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실밥을 빼던 날, 지렁이 같아 보이던 흉터가 실선처럼 변하게 되자 신기하게 쳐다보던 환자에게 방심하면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니 당분간 깁스를 유지하면서 지켜 보기로 하고 레이저 치료를 시작했다.

오늘이 2개월째 접어드는 날, 흉터가 좋아지는 만큼, 마음속 상처도 함께 치유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깁스 푸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성형외과에는 상처를 지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팔뚝에 그은 상처, 어릴 적 다친 얼굴이나 몸의 상처, 언청이 수술 후에 생기는 상처, 화상으로 생긴 상처 등 수많은 흉터를 치유하기 위해 찾아온다.

환자를 인터뷰를 해 보면, 다친 순간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상처로 인해 견뎌야하는 커다란 짐 하나가 늘 어깨위에 올려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단순히 흉터만 바라볼 것이 아니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마음 속 흔적들을 함께 찾고 흉터에 대한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 그래야 수술로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정한 다음, 자신의 기대치를 현실적인 수준에 맞출 수 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흉터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한 부분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2020년의 마지막 날, 우리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코로나19’라는 주제로 귀결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당당하게 해 나가는 새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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