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승남 기자.
▲ 신승남 기자.
중부본부 부장 신승남

2020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자신에게 특히 관대한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뜻으로 ‘남이 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맨스’라는 말이다.

올해 정치권에서 유독 많이 회자된 말이 ‘내로남불’인 점에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에 비해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취업준비생들에게 물어 선정한 사자성어는 ‘우환질고(憂患疾苦)’, 간난신고(艱難辛苦)’, ‘각고면려(刻苦勉勵)’ 등이다.

특히 어렵고 힘들었던 한 해 였던 점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다행히 각고면려는 뜻하지 않은 위기에도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나가겠다는 뜻이어서 위안이 된다.

어느 한 해 어렵지 않은 해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뒤돌아보면 모두들 후회할 일만 있었던 해였다. 그래서 연말 사자성어는 늘 괴롭고, 어렵고, 고생하고, 근심스럽다 등의 말을 나타내는 苦, 艱, 難, 辛,憂 등의 한자로 꾸며진다.

올해는 더욱 그렇다.

더욱 괴롭고,고생스럽고 근심할 일만 가득하다. 코로나19라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 때문이다.

설 명절을 보내자마자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한 해가 저무는 이 시간까지 우리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희생과 정부의 각종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재 3차 대유행이 진행중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도, 손을 잡아줄 수도 없고 추석 명절에는 가까운 가족과 함께 하지도 못했다. 각종 회의는 물론, 수업과 공연이 언택트로 진행되면서 대세는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소상공인들은 IMF때 보다 더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우리가 그저 평범한 것으로 치부하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특별해졌다.

반갑게 맞아주던 친구가 소중하고, 재잘재잘 거리는 아이들의 함박 웃음이 그립고, 왁자지껄한 시장 분위기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한 해의 끝자락에서 가수 이적의 ‘평범한 것들’이라는 노래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흔한 표현으로 ‘그저 그래’라고 답하던 많은 소소한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나무는 겨울이 오면 푸르고 붉었던 나뭇잎을 떨구고 맨몸으로 겨울을 난다. 삼꾼들 얘기를 빌리면 산삼은 자기 주변에 토양의 영양분이 모두 없어지면 낙엽이 떨어져 영양분이 쌓일 때까지 잠을 잔다고 한다.

마냥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가지끝에 겨울눈을 맺어 봄이 오면 싹과 꽃을 틔울 준비를 해 둔다. 또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들은 해거리를 통해 양분을 축적하고 한 해를 쉬어간다.

식물들이 오랜 세월을 이겨내온 지혜가 그곳에 있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그 끝자락엔 봄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와 불편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교훈도 주고 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내 목소리는 작게 내고 귀와 마음을 열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는 것이다.

인류에게는 성장을 위한 개발과 경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서서 인류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겨울은 그런 해의 겨울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다(This too shall pass away).’

고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인 다윗왕이 금세공인에게 ‘승리에 자만하지 않고 절망에 좌절하지 않은 글귀를 반지에 새겨달라’고 하자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왕자가 일러준 글귀다.

여느 겨울보다 더 혹독한 이 겨울, 유대교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에 실린 이 글귀를 마음에 새기고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자.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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