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욱
▲ 김시욱
김시욱

에녹 원장

양말을 걸어두고 다음날 아침이면 소박하지만 간절한 선물을 기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으로 한 끼 식사마저도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연필 한 자루, 노트 한권을 소망하며 잠이 들던 연말의 기대감은 그래서 좋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인물이든 아니든 다시 산타를 기다리던 계절이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넘쳐나고 더 낮은 이들을 위해 작은 마음을 전하던 온정과 기부의 연말이다. 화려한 종탑과 더 큰 십자가가 교회마다 매달려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간간이 셔터내린 상점들을 보노라면 임대료로 고심할 그들의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12월 한 달 동안 모금된 구세군의 자선냄비 특별모금이 14일 기준 20%나 감소했다. 감염의 위험으로 자선냄비는 사라지고 비대면 온라인으로 대신한다는 발표마저 있다. 이 모든 현상들을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리기엔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흔히 죽음을 마주하는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생존의 의미와 애착을 더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본능적 욕구임에 틀림없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 앞에서 분명 생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감에 빠져있는 다수 국민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자신과 가족의 안위마저도 확신하지 못해 불안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과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코로나19로 시작된 2020년은 온통 불확실성의 시기였다. K-방역이라고 확신했고 대통령이 나서서 단시간에 잡겠다던 약속은 어느새 허언이 되고 말았다. 첫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을 때, 대통령은 국위를 선양했다며 ‘짜파구리’ 파티로 영화인들과 기뻐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적 결과로 국민들은 그것마저 용인했다. 초기 중국봉쇄에 대한 높은 요구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국가 경제적 측면이란 정부 입장에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당시 ‘코로나19 중국눈치보기’라는 내용으로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에 38만 명이 동의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이 76만 명을 넘었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바이러스 발병지인 중국 봉쇄 대신 ‘신천지 코로나’란 이름으로 대구 봉쇄를 청원한 이른바 ‘문빠’로 불리는 극성 지지자들과 진보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갈라치기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최근에는 K-방역 홍보비와 백신 계약 문제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다. K-방역 홍보비로 1천200억 원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안철수, 주호영 등 야권 지도자들로부터 나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방역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더 커지고 있다. 세계가 앞다퉈 확보한 코로나 백신물량 부분과 접종 시기에 대한 문제에 있어 우리 정부는 뒤늦은 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진위 여부는 훗날 밝혀질 일이지만 의료 전문가들로부터 수개월 전에 경고됐던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K-방역은 실패와 다름없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문제는 결코 ‘몽니’ 부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수석 비서관, 보좌관 회의를 통한 정치 및 경제 전반에 대한 두리뭉실한 ‘퉁치기’식 방법이 아닌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국민 사과에 나서야 한다. ‘내 탓’이라는 자세로 나서야만 정권을 잡은 여권과 극성 지지자들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부동산 문제 역시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20여 차례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한 것으로 부동산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나아가고 있다. 진단부터 잘못됐다는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들의 최근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으로 이뤄지는 시장가격의 원리는 부동산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다주택자 역시 주택 공급 역할을 하고 있으며, 거래를 통해 시장 자율 조정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전문연구원의 말은 이와 다르지 않다.

정부 주도의 억제 정책은 일시적 효과일 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국민 대다수가 좌파들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고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개혁이라는 명제 앞에 수많은 불확실성만 키워 온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그 불확실성은 진영논리 속에서 더욱 견고해졌고 국민의 불안과 좌절감은 미래를 잃어버리게 만들어 왔다. 내일을 꿈꾸던 국민은 오늘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역의 주체는 정부가 돼야 함에도 국민 개개인에게 맡겨진 오늘의 현실 앞에 ‘우리는 무정부주의자가 돼야 하는가?’ 반문하고 싶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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