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언론인

“불행하게도 국가적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는 일부 인사들과 불순분자들은 부질없는 선동과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시키면서 사회 혼란을 조장해 헌정질서인 유신체제를 부정하고 이를 전복하려 들고 있다.”

1974년 1월8일,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긴급조치 1호를 발동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거나 반대 왜곡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15년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당시 정치적으로 순진(?)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의 대통령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대신 돌격대가 있고 행동대가 있으니까.

“일제강점기 전쟁범죄와 5·18민주화운동 및 4·16세월호참사 등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 왜곡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피해자와 그 유족의 고통을 치유해 국민화합에 기여하고자 한다.”

민주당 양향자 의원 등 31명이 발의한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안이유다. 2020년 12월9일. 민주당은 허위사실을 유포해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통과시킨다.

정부차원의 포괄적인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진통 끝에 활동을 시작했고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도 이제 막 출범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5·18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피해 회복은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한 뒤에 제정해야 순서가 맞는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반대와 토론을 통해 공통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절차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권력의 퇴행적 정치행태는 시간이 걸릴 뿐 결국 바로잡아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2차대전 후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들이 주력인 미국 시카고의 작은 시골마을 스콜키에서의 일화다. 이곳에 백인우월주의 KKK가 전국대회를 열기로 하자 바짝 긴장한 시의회는 대회를 불허한다. KKK는 사상과 표현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건다. 그런데 이 소송에 유태인이 후원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이 변호를 자청한다. ACLU의 젊은 변호사 논리는 이랬다.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을 금지시킨다면 나치와 우리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가 파시즘, 공산주의와 다른 것은 그것이 틀렸더라도 틀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틀렸다는 이유로 억압할 때는 그것도 언젠가 우리의 올바른 생각마저 억압하게 된다.”

결국 ACLU는 소송에 이겼고 KKK는 스콜키에서 단합대회를 열게 된다. 그러나 그 대회는 청중도 없이 설렁한 대회가 됐다고 한다.

1973년 12월24일, 당시 우리 사회 각계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를 결성한다. 이를 주도해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장준하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긴급조치는 9호까지 연거푸 발포됐고 2013년 3월 헌법재판소는 이런 긴급조치가 모두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린다. “비판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는 공권력의 행사나 규범의 제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민주당은 21대 국회 본회의 막바지에 공수처법 개정안까지 통과시켰다. 2021년 출범할 공수처는 공수처장 추천에 대한 야당의 거부권을 삭제해 대통령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여기에다 현 정권의 질주에 제동을 걸려는 검찰총장 찍어내기까지, 민주당의 검찰 개혁은 이렇게 권력기관 장악으로 일단락됐다.

공수처법과 5·18 왜곡 특별법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멍에를 씌울 것인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국민들에게 기대감보다 불안감을 안겨 주고 있다. 우리가 경험했던 과거에 대한 기시감 속에 2021년이 오고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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