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우연찮게 접한 책의 제목이 묘한 끌림으로 다가왔다. 강력한 끌림이었다. 개소리가 세상을 정복했다니…. 하지만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개소리를 들으며 언짢아해왔던가를 돌이켜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뉴스조차도 개소리로 채워지지 않았던가.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이라는 부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지난달에 나온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제임스 볼 지음/김선영 번역/다산초당)라는 책이다.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공감하게 만든 건 ‘개소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헛소리 혹은 허튼소리 정도로 번역해도 될 ‘Bullshit’이란 영어 단어를 ‘개소리’라는 말로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명쾌함도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이미 수많은 개소리에 지쳐있을 즈음이었을 수도 있었다. 자기 입맛에 딱 들어맞는 말을 골라 자기 마음대로 내뱉어대는, 더하거나 덜하지도 않은 말 그대로의 개소리 말이다.

책은 개소리(bullshit)는 거짓말(lie)과도 다르다고 강조한다. 거짓말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꾸며낸 말이지만 개소리는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더 큰 진실의 적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 중 상당수가 개소리였음을 뒤늦게 확인하곤 한다. 특히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잇따라 하면서 세계적으로 개소리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유행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책에서는 영국의 사례도 알려준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 과정에서 치른 투표에서도 사실보다는 자극적인 개소리가 유권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게 비단 미국이나 영국만의 문제일까.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을 때 SNS를 중심으로 가짜뉴스가 극에 달했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들어올 수 있다’거나 심지어 ‘난민들 때문에 성범죄가 급증할 수도 있다’는 등의 추측성 의견들이었다.

개소리는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될수록 심해지기도 했다. 마스크 한 장을 사기 위해 수백미터의 줄을 서고 있을 당시 ‘정부가 북한 지원용 마스크를 비축하고 있다’는 글도 개소리로 밝혀졌다. 올해 가을엔 독감백신 접종 뒤 사망 사례를 예로 들며 공포를 더욱 확산시키기도 했지만 결국은 백신과 연관성이 있는 사망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각종 정보와 뉴스가 SNS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다. 우리들이 보고 듣는 정보는 그 중에서 몇 개만 고르게 되고 때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정보, 때론 각종 매체에서 걸러서 보내주는 뉴스만 보고 그걸 또 공유한다. 가짜뉴스를 퍼나르게 될 정도에 이르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오직 하나의 개소리로만 존재할 뿐이다.

개소리를 악용하는 집단들도 문제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심리를 파고든다. 더 큰 문제는 개소리에 흔들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며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 게다. 진실이 무너진 사회, 개소리가 범람하는 사회….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개소리는 계속 생산되고 퍼날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한숨짓게 만든다. 개소리가 표가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이를 생산해내고, 클릭 수에 목마른 미디어는 이를 유통시킨다. 또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는 사람들은 SNS로 퍼나르며 맞장구치는 것이다.

내가 오늘 보고 들은 것은 진실일까 아니면 내가 믿고 싶어하는 신념일까. 혹시 나는 ‘개소리꾼들’의 ‘개소리’에 솔깃해하지 않은가? 한번쯤 자문해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책의 한 단락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개소리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할 뿐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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