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며칠 사이 날씨가 무척 추워졌다. 겨울 한파가 몰아치고 코로나19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날마다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드디어 동지가 다가왔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섣달 긴긴밤이다. 낮은 가장 짧은 날로 고대인들은 동짓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270도 위치에 있을 때가 바로 동지다.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예전에는 이날을 작은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음력으로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 것이리라.

온통 코로나19에 휘둘려 어렵게 견뎌내기, 극기 훈련하는 듯한 올해는 12월21일이 동짓날이다. 음기가 가장 세지는 날이라 이때엔 양기의 대표 곡식인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고 집안 곳곳에 뿌리거나 놔두는 풍습이 있다. 동짓날 팥죽은 음기를 누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데도 좋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낸 한 해인 만큼, 많은 이들이 동지 시간에 맞춰 팥죽을 쑤어서 뿌리거나 팥 시루떡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서 액이 물러나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기원하리라. 올해의 동지 시간은 저녁 7시2분이고 그 이후 해가 지고 나면 하늘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보다. 목성과 토성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우주 쇼가 이어진다고 한다. 아무쪼록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동짓날 천체가 보여주는 멋진 쇼를 구경할 일이다.

동짓날은 시기에 따라 나뉘게 된다. 음력 11월 초순에 동지가 오면 애동지, 중순에 오면 중동지, 하순에 오면 노동지라고 한다. 올해의 동지는 음력 11월7일이라 애동지다. 예부터 애동지 때는 팥이 들어간 떡을 해 먹었고 팥죽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애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에게 해가 갈 수 있다고 하니 팥이 들어간 떡으로 액이 물러나기를 기대해본다.

동지를 작은 설로 보는 이들 사이에 재미있는 말들이 오간다. ‘동지 전에 일 년 동안에 진 빚을 다 갚는 법이다’라고 하고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소 누울 자리만큼 길어진다’라고도 말한다. 이제부터는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진다는 의미이지 않겠는가.

동지 준비 하러 죽집에 들렀다. 자주 가던 그 가게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인지 종업원은 배달 주문 들어온 죽을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하얀 지팡이를 이리저리 두들기는 한 신사가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목에는 긴 줄로 만든 목걸이에 최신형 아이폰이 매달려 있고 한 손에는 동치미 팩이 들려있다. 팥죽을 담아 종이 가방을 건네주자 팔에 걸더니 ‘탁 탁 탁 탁’ 지팡이로 바닥을 가늠하며 익숙한 걸음으로 문을 나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횡단보도 점자 블록을 찾아서 서 있다가 신호등이 바뀌자 음성 안내에 따라 유유히 건너간다. 무심코 바라보는 내게 주인장이 한마디 건넨다. “동지 때면 저분은 꼭 이곳에 와요. 팥죽은 추억의 맛인가 봐요”라고. 그에게 추억은 무엇일까.

이맘때면 이승을 떠난 어머니가 무척 그립다. 팥죽 끓일 준비로 새알심을 만들며 나누었던 정경이 떠오르곤 한다, 하얀 지팡이를 들고서 유유히 걸어가는 그분도 그런 어머니가 생각나서 들린 것일까. 이제는 동지가 되면 그의 뒷모습도 생각날 것 같다. 능숙하게 세상을 걸어가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간 하루하루를 어찌 견뎌냈는지 무엇을 이루면서 보냈는지. 오늘이 바로 양의 기운이 서서히 충만해 온다는 동지이지 않은가. 붉은색이 액운을 쫓는다고 하니 팥죽이든 팥떡이든 무엇이라도 먹어야겠다. 특별히 올해는 애동지라고 한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 먹으면 좋지 않겠는가. 옛 풍습은 그렇지만, 팥죽이면 어떻고 팥떡이면 어떠하랴. 팥은 영양학적으로 볼 때도 훌륭한 건강 기능식품이 아니던가. 팥에는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비타민B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탄수화물의 소화 흡수를 돕고 피로감을 개선한다. 사포닌과 콜린 함량도 많아 혈중 중성지방 조절과 체중 관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기억력 감퇴도 예방해준다니 우리 건강도 지키고, 붉은 기운으로 코로나19라는 액을 멀리멀리 쫓아내기를 소망한다.

올해의 동지만큼은 붉은 팥으로 만든 음식을 맛나게 먹으며, 마음의 눈으로 따뜻한 세상을 그려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늘 양의 기운이 가득하기를.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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