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눈가면을 쓴 ‘국정 폭주’

눈가면(차안대·遮眼帶)은 경마에서 말의 눈 부위에 씌워 옆이나 뒤를 볼 수 없도록 하는 기구다. 말이 앞만 보고 달리게 하기 위해 고안됐다.

최근 정부·여당의 ‘국정 폭주’는 눈가면을 하고 달리는 경주마를 연상케 한다. 정권 차원에서 진행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는 그런 행태의 정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도 전혀 다를 바 없다. 눈가면을 쓰면 목표만 보인다. 복잡다단한 사안의 다른 요소는 전혀 볼 수 없다. 국정 현안의 조화나 전후좌우 파급 영향은 고려 밖이다.

---의회 민주주의 무너진다는 비판 이어져

윤 검찰총장이 지난 주 끝내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정권 관련 비리수사 등으로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현직 검찰총장이 징계를 받은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대다수 검사들의 징계반대 의견과 법무부 감찰위의 부적절 결론은 무시됐다.

들끓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다. 처음에 내세운 검찰개혁의 본뜻은 간 곳이 없다. 많은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들을 국회에서 군사작전 하듯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보수 계층과 야당의 반대가 극심했던 법안들이다. 의회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이 의석 수를 앞세워 통과시킨 법안들은 국가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전체 국민의 공감대가 결여돼 있다. 향후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할 소지가 다분하다.

국정원법 개정안은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대공수사 공백과 경찰 권력의 비대화 우려를 낳고 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국가에 의한 역사 독점이란 비판마저 나온다.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은 대북전단살포행위 처벌 규정을 담고 있다. 야당은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반발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처장 추천과 관련한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립성 보장을 위해 여당이 약속한 것이지만 시행도 해보기 전에 법을 바꾼 것이다.

정부·여당은 국민 편갈림과 국론 분열의 위험을 도외시한다.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서둘렀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개혁 과제’ 추진에 냉소적 반응을 보이거나 등을 돌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국민들은 겨우 숨만 쉬는 형국이다. 민생은 깊이를 가늠할 수없는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다. 당정이 말하는 개혁입법이나 검찰총장 무력화를 시도하며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경제가 자생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자영업자, 특수 고용직 근로자, 소상공인, 실직자들의 삶은 한계선상에 봉착했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요체는 대화와 협상이다. 모든 정책은 속도와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반발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 둘러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사생결단식의 막말·적대감만 번쩍여

정부·여당은 민생이 우선돼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에 개혁을 들고나와 나라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밀어넣고 있다. 사생결단식 막말과 적대감만 번쩍인다. 윤 총장 징계와 입법 폭주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과 궤를 같이 한다.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시간과 여유를 더 가져야 한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현안들은 한꺼번에 태풍 몰아치듯 처리할 성질이 아니다. 집권당은 또 다른 쪽의 국민을 대표하는 야당과의 대화를 포기하거나 배척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국론을 한 곳으로 모으지 않으면 코로나 대책도, 개혁입법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정치가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민생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다. 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말만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는 것이 먼저다.

지국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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