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그대를 보내며~

… 미령의 남편은 항공기 부기장이다. 항공기를 타는 남편은 집을 자주 비운다. 그녀는 조종사 제복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구두도 매일 닦는다. 날개 문양이 달린 조종사 모자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둔다. 조종사 제복을 입은 남편의 대형 사진은 거실 벽에 걸려있다. 위압적인 대형 사진은 방문객을 압도한다. 그녀는 경외심을 가질 때까지 방문자에게 남편 자랑을 하곤 한다. 자신의 여유와 품위도 훌륭한 남편의 후광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공 변호사는 부동산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사공이 미령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도 그녀 남편은 집에 없었다. 미령은 매매계약서에 서명했다. 새벽 두 시경에 집을 나왔다. 잠시 한눈을 파는 순간 대형 트럭이 덮쳐 정신을 잃었다. 사공은 무의식 속에서 미령의 남편과 조우하여 매매계약서에 서명을 받았다. 사공은 사고 순간 뇌를 크게 다쳤다. 근 한 달 만에 깨어났다. 기억상실이나 정신착란이 오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그만 모르는 비밀이었다. 사공의 부인, 윤경은 사고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급히 왔다. 윤경은 미령의 남편이 항공기 추락사고로 몇 해 전에 죽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사공과 윤경은 유학시절 만나 결혼하였다. 남편의 수임이 거의 없게 되자 한국에서 강의를 하던 윤경은 이혼할 생각을 했다. 남편의 사고는 그 계획에 차질을 주었다. 재혼할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나라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처지에 손가락질 받아가며 이혼할 이유가 없었다. 윤경은 그냥 한국으로 갔다. 사공은 겉보기엔 멀쩡할 만큼 회복되었다. 어느 봄날, 사공은 조종사 제복을 입고 미령의 집으로 갔다. 미령은 남편이 항공사를 그만두고 돌아온 거라 믿었다. 그녀는 남편이 전투기를 탈 때부터 지금까지 사고 공포에 시달렸다. 이제 위험에 처하지도 않고 사망할 염려도 없다고 안심했다. 사공은 자고 있을 때 제복 입은 조종사가 왔다가 사라졌다. 사공의 무의식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이 사고로 죽었을 때 미령은 그의 죽음을 부정하고 참혹한 현실과 선을 긋고 싶었다. 상을 치른 후 그녀는 미국으로 이민 왔다. 미령은 매일 남편의 구두를 닦고 모자를 털고 제복을 손질했다. 이웃들은 그녀 남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미령의 잠재의식 속에는 감성과 이성의 지배를 받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 터였다. 미령은 운명의 신에 대한 반발로 시공의 법칙을 부정하는 식으로 남편의 죽음을 거부해 왔다. 그 자신을 누에고치 속에 가뒀다. 새벽에 사공은 집을 빠져나왔다. 미령은 모른 척했다. 그가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 메시지를 읽었다. 미령은 환영을 지워버리기 위해 남편의 제복과 모자를 치웠다.…

미령은 갑작스런 남편의 사고로 다중인격 장애를 겪고 있다. 지속적인 사고의 공포도 한 요인이다. 자신에게 뜻밖의 불행을 가져다 준 신에 대한 반항으로 남편의 사망을 거부하고 있다. 그녀의 또 다른 인격은 남편의 죽음을 알고 있다. 사공 변호사는 갑작스런 사고로 정신착란을 겪는다. 무의식 속에서 죽은 남편을 만나 그 진실을 알게 된다. 사공은 갑자기 미령을 떠난 그녀 남편을 대신해 그녀 집을 방문한다. 미령을 위로하고 작별인사를 전하고자하는 무의식의 발로이다. 미령 또한 무의식에 반응하고 마침내 자신의 불행을 수용한다. 두 영혼의 무의식이 만나 해원하고 정신착란과 다중인격 장애를 치유한다. 흐뭇한 엔딩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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