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어이없는 심술’이라고 했다. “같은 나라 국민인지 의심스럽다”는 이웃 처지를 아랑곳 않는 언급에 부아가 치민다. 지난 주말 부산의 ‘가덕신공항 추진 범시민운동본부’의 공식 성명서에 나온 말이다.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이 지난 11일 부산시청을 방문, ‘가덕도신공항 건설 추진’을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이자 내놓은 성명서였다. TK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대구·경북이 ‘사촌 논 사자 배 아파하는 꼴’로 취급되고 있다.

신공항을 둘러싼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의 갈등이 심상찮다. 감정 대립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TK는 김해 신공항 백지화가 부당하다며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막아보려고 안간힘이다. 반면 PK는 TK의 주장을 지역주의로 몰아붙이며 참견 말라고 윽박지른다.

대구시민추진단은 김해신공항에 문제가 있다면 원점 재검토가 맞고, 약속대로 지역 간 사전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부산 시민들은 가당찮다는 반응이다. 가덕신공항 추진 범시민운동본부는 즉각 “어이없는 심술에 기가 찬다”는 성명서를 냈다. 지역 이기주의라고 쏘아붙였다. 방해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 놓았다.

-가덕도 추진 PK, 반대하는 TK에 ‘엄포’

부산시의 지적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국가 정책을 뒤엎고 추진하는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저들은 과학적, 기술적인 검증이고 합의 위반은 TK가 먼저 했다고 우긴다. 밀양 재검토는 괄호 밖이다.

TK는 4년 전 김해 신공항 확장으로 결정 난 후 허탈해하다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립 이전으로 겨우 돌파구를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군위·의성 이전을 결정하고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덕도 신공항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다. TK는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으려던 통합신공항이 가덕도 신공항과 노선 경쟁, 지역 항공 수요 위축 등을 우려해 가덕도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지역 이기주의의 ‘몽니’로 몰아붙일 수 있는가. 경남 서부에서 사천 신공항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이를 일축하는 부산시다. TK는 먼 산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는 입장인 것이다.

대구는 29년째 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다. 변변한 대기업 하나 없다. 제일모직, 코오롱, 효성 등이 떠났다. 경북도 대기업 유치에 목을 매지만 떠나는 기업이 더 많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베트남과 파주 등지로 이전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리쇼어링도 각종 당근책에도 불구, 반응이 별로다. 거기다가 대학생과 젊은 층의 수도권 유출은 끝을 모른다. 뚜렷한 미래 먹거리 산업도 없다.

TK 지역민들이 고민 끝에 찾은 것이 동남권 신공항이었다. 하늘길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구·경북이 아닌 경남 밀양을 선택했다. 차선책으로 김해공항 확장안에 동의했다. 이마저 무산 지경이다.

-절박한 TK의 하늘길 소망 외면 말아야

영남권 신공항은 1990년대 국가 제2의 관문공항 필요성이 제기된 후 지역에서 논의되다가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대형 국책사업으로 시동 걸었다.

밀양을 신공항 후보지로 선택한 것은 TK다. 당초 TK는 국제공항 적지로 경북 영천을 꼽았다. 논의 과정에서 영천은 팔공산 등 장애물 때문에 부적합 판정 났다. 호남권까지 아우르는 남부권 국제공항이 필요했다. 결국 밀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여건상 국제공항은 2개 정도가 적합하다고 결론났다. 경남지역 지자체와의 접근성을 감안해야 했다. 호남지역 지자체장들도 적극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대구·경북의 남부권신공항범시도민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여기까지 왔다.

이런 배경과 TK의 노력은 외면한 채 부적절한 처신으로 시장직을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덜컥 해묵은 가덕도 신공항을 다시 끄집어 냈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승리가 절실한 정부 여당은 가덕도를 잘 우려먹고 있다. 남부권에서 쪼그라든 영남권 신공항은 정치에 휘둘려 네 차례나 뒤집힌 후 다시 원위치 했다. 재검토만 14년째다. 정치 희생양이 됐다. 국론은 분열되고 지역 갈등만 남았다. TK 가슴에 대못을 콱콱 박고 있다. 묻고 싶다. PK와 정치인들, 당신들이 TK의 절박감을 아는가.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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