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오후 3시가/ 머리 위에 걸렸다/ 햇빛이 덜컹,/ 남은 오후가 휘청대며/ 그림자,/ 스토커처럼 날 따라다니며/ 잘근잘근/ 하루를 씹고 있다// 오후 3시!/ 어중간한 시간이다/ 시작도 포기도/ 희망도 체념도/ 젊음도 늙음도/ 그러나/ 싱싱한 눈부심이 있다// 훌쩍 넘겨 버린 반!/ 이제 나머지 반은 나를 위해 쓰겠다/ 글도 시간도 사랑도/ 그래서 쓰려 한다/ 우리들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대구문학대표작선집Ⅱ」 (대구문인협회, 2013)

태양이 뚜벅뚜벅 걸어와 중천을 지나간다. 시계바늘이 종종걸음으로 한 바퀴를 돌고 와 다시 돌아가다가 이제 3시에 걸터앉는다. 오늘 가야할 길의 절반을 넘긴 탓인지 태양은 게으름을 피우며 지나온 자취를 되돌아본다. 지나온 길이 상당하지만 남은 길도 아직 만만찮다. 한참 걸어왔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다. 괜스레 어깨가 처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돌아갈 수 없다. 머리에 열이 오르고 발바닥이 뜨겁다. 그렇다고 쉬어갈 계제도 아니다. 다리를 휘청거리고 발을 끌면서 서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갈 따름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여느 때와 같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 무료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면 배를 채우고 차라도 한잔 마셔야 또 오후를 견뎌낼 수 있다. 구름을 머리에 이고 태양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간다. 그림자가 떨어지지 않고 졸졸 따라다닌다. 떼어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림자는 더욱 더 찰싹 달라붙는다. 이쯤 되면 다른 해코지를 하지 않아도 스토커나 다름없다.

오후 3시는 어중간한 시각이다. 다른 일을 시작하기도 어중간하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온 일을 포기할 수도 없다. 새로운 일을 새로 시작하자니 너무 늦고, 하던 일을 계속하자니 지겹고 따분하다. 새로운 희망을 갖기도 뭣하고, 희망을 버리기도 뭣하다. 오후 3시쯤이면 해가 밝다. 해오던 일에 적응한 터라 제법 능수능란하다. 그 일에 대한 처리능력이 상대적으로 남보다 낫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론은 버킹검이다. 그렇다. 남은 시간에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열심히 사는 일이 최선의 방책이다. 이젠 남은 시간에 한 눈 팔지 말고 집중할 일만 남았다.

인생에서 오후 3시면 사십 대쯤이다. 어떻게 보면 어중간한 시기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니 용기도 나지 않고 늦은 것 같기도 하다. 해오던 일을 계속하자니 앞이 안보이고 생짜증이 난다. 처자식이 스토커마냥 바짝 달라붙어 어깨를 내리누르고 숨통을 죈다. 인생의 권태기라 할만하다. 한편, 그때쯤이면 일에 질이 났을 뿐더러 벌이도 좋다. 인생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선택한 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눈이 밝아지고 손발이 재빠르게 움직이게 되는 그때, 누구나 망설이고 또 고민하는 것이다.

중년은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다. 절반의 시간이 지나갔지만 또 절반의 세월이 남아있다. 남은 인생을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고루하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시인은 사랑을 나누면서 남은 인생을 보낼 작정이다. 그리고 달콤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써야지.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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