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년에 도입됐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수능시험은 고교에서 배우는 국수영, 사탐, 과탐의 과목별 교과 내용에 근거해 학생의 사고력과 학업 성취도를 동시에 측정한다. 수능시험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질과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적성검사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각 과목을 1~9등급으로 나누고는 몇 개 영역 등급 합으로 수시모집 최저학력기준 충족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자격 검정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정시모집에서는 과목에 따라 반영비율을 달리하거나 특정 과목에 가중 또는 감산점을 주고는 총점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선발 고사의 기능도 가진다.

현행 수능시험에서 국어 수학 사탐 과탐은 상대평가다. 상대평가에서는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상위 4% 안에 들면 1등급이고 11% 안에 들면 2등급이다. 상대평가에서는 원점수 100점 만점 기준으로 80점을 받아도 전체 응시자의 4% 안에만 들면 1등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반면 영어와 국사는 절대평가다. 이 경우 문제의 난이도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쉬우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고, 어려우면 상대적으로는 우수한 점수를 받아도 등급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어는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이 7.43%였으나, 올해는 문제가 쉬워 1등급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사도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난이도에 따라 등급별 숫자는 달라진다. 영어는 수시 최저학력 기준 충족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정시에서도 많은 대학이 등급마다 차등을 두고 점수로 반영하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경시할 수 없는 과목이다. 반면에 한국사에 대한 관심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한국사는 원점수 50점 만점에 40점 이상이면 1등급이다. 그다음부터는 5점 간격으로 등급이 달라진다. 대부분 대학에서 인문계는 3등급(30점), 자연계는 4등급(25점)을 받으면 손해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수험생은 한국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한국사는 필수로 도입됐다. 그러나 해마다 최소한의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한 문제 때문에 한국사 시험 무용론이 제기돼 왔다. 올해 몇몇 한국사 문제는 국사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도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수능 문제는 담당 교사에게 허탈감을 주고, 교사의 존재 의미 자체를 폄훼한다”며 현장 교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교사들은 “이번에 논란이 된 한국사 일부 문항은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아도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여서 역사교육 강화 취지를 무색케 만들었다. 타당도와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 문항으로는 올바른 역사 교육은커녕 한국사 교육의 파행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올해 수능 한국사 시험은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킨 홀수형 기준 20번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뗀석기’를 찾는 1번 문항도 코미디라고 말한다. 한국사를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그림을 보고 ‘주먹도끼’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1번 문제도 ‘창의군의 영수 전봉준이 충청 감사에게 글을 올립니다’로 시작되는 지문을 주고는 옳은 설명을 고르라고 했다. 보기가 정말 코미디 수준이다. 베트남 전쟁, 안시성 전투, 한산도에서의 대승, 인천 상륙 작전 같은 보기와 함께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보기를 제시했다. ‘일본군과의 전투’만 보면 답은 바로 찾을 수 있다. 전봉준 관련 지문을 읽으며 어떻게 함께 제시된 다른 보기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예로 든 이 세 문항은 모두 2점이 아니고 3점짜리 문제다. 시험을 치고 나온 어느 수험생의 말이 압권이다. “선생님, TV 코미디 프로가 없어진 이유를 아세요? 수능 한국사 문제가 사람들을 충분히 웃겨주기 때문에 폐지된 것입니다.” 수험생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한국사 시험이 종이 낭비라는 뜻이다. 공부하지 않아도 기본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절반만 맞아도 아무 불이익이 없는 과목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한국사 시험 난도를 높이거나 정시에서 반영 비율을 좀 더 높여야 한다. 아니면 수능 응시 과목에서 과감히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 당국의 냉정한 성찰과 합리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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