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 김해신공항의 사실상 백지화 방침 발표 이후 반발다운 반발 한번 못하는 모양새다.

내일이면 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가 검증결과를 발표한 지 3주가 된다. 그간 지역의 반대 의지에 힘을 더할 수 있는 시·도민 서명운동이나 그 흔한 항의 삭발조차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조직적 대응이 실종된 결과다.

점잖고 의연하게, 논리와 대화로 풀어가려는 전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상대인 부산지역은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여야 구분없이 지역 이익을 위해 한순간 똘똘 뭉쳤다. 입법의 허울을 쓰고 국책사업을 뒤엎는 폭거의 최전선에 나선 것이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반발 사실상 실종

이에 반해 TK출신 국민의힘 의원들은 다른 국사에 매달렸다. 지난 11월 마지막 주말 대구·경북 곳곳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한 추미애 법무장관을 성토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1인 시위를 펼쳤다.

그들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위상을 동네공항으로 끌어내리는 가덕도신공항 추진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시·도민의 결집된 힘을 이끌어낼 생각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다.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주지 않는다고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하는 여권에 맞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이기도 하다. 지금 대구·경북에서는 가덕도신공항 저지가 최대 현안이다. 지역 의원들의 대응 자세를 보고 지역민들이 허탈감을 떨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왜 애써 모른 체하나.

대구시와 경북도의 대응도 한 치 다르지 않다. 한두번 반발 액션을 취하다 감감소식이다.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력감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지역 현안에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한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방치한데 이어 수습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직무유기에 무능력이 겹쳤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둑이 터져 강물이 밀려드는데 나서서 수습하는 사람이 없다. 시·도민에게 물어보라. 지금 나서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앞장서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지 말이다. 이럴 때 나서라고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국회의원들을 뽑은 것 아닌가.

가덕도신공항의 불합리성을 공박하던 서울지역 언론도 ‘윤석열 논란’에 묻혀 이제 시들하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사태가 국민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출신 의원의 “가덕도신공항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등의 이야기는 듣기조차 민망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말 몇마디로 생색을 내려는 면피성 행보다. 4대 관문공항 추진 등 출구전략을 내세우는 홍준표 의원의 제안은 찬반을 떠나 지속적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바람직한 면도 없지 않다.

뒷짐 행보는 안된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경우별 대응방안을 세우고 지역민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래야 대응에 힘을 받는다. 정부와 부산에서는 대구·경북의 반발 강도를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체념하고 말 것인가. 시·도민을 패배의식의 구렁으로 몰아넣어서는 안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절차를 생략한 채 무법자처럼 동남권신공항을 가덕도에 짓겠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특별법안을 발의한 뒤 내년 2월까지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것도 예타까지 면제하겠다며 못을 박았다. 비난여론을 개의치 않는다. 내년 부산시장 재선거 표심을 긁어모으기 위해서는 못할 게 없다는 투다.

---정부 공식 입장만 기다리면 일 그르쳐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물론이고 정부 내 관련 부처에서 불만과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국책사업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결정돼서는 안된다는 최소한의 양심의 소리라고 봐야 한다.

검증위 발표와 관련해서도 위원장이 가덕도를 언급한 적이 없다며 한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을 발표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불합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대구·경북의 반격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정황이 연이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최종 입장만 기다리다 일을 그르칠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시·도민의 결연한 의지를 모아 압박에 나서야 한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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