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약 90년만에 대구에서 모습 보인 ‘시인 이상화’의 사연 품은 ‘죽농 병풍’

1932년 죽농의 작품을 상화가 포해 김정규에게 선물한 10폭 병풍

이상화 시인과 함께 대구를 중심으로 교류하던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품은 병풍 한 점이 대구로 돌아왔다.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이 행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기증자인 김종해(왼쪽)씨와 이원호 이상화기념관장
이상화 시인과 함께 대구를 중심으로 교류하던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품은 병풍 한 점이 근 90년의 세월을 건너 대구로 돌아왔다.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1903-1978)이 행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병풍의 마지막 폭에 1932년 죽농 서동균이 글씨를 쓰고 시인 이상화(1901-1943)가 포해 김정규(1899-1974)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서화 작품 가운데 이처럼 제작 연도와 얽힌 사연이 뚜렷하게 기록된 것은 드문 사례다.

3일 오전 10시30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병풍 공개행사에는 기증자인 김종해씨를 비롯해 이원호(이상화기념관 관장), 채홍호(대구시 행정부시장)씨 등이 참석했다. 병풍 기증과 함께 이상화 후손인 이원호 이상화기념관장이 기증자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선물을 전달하는 등 기증식은 시종 훈훈한 모습을 보인 가운데 진행됐다.

이상화 시인과 함께 대구를 중심으로 교류하던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품은 병풍 한 점이 대구로 돌아왔다.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이 행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이원호 이상화기념관장이 병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에 병풍을 기증한 김종해씨는 이상화 시인으로부터 이 작품을 선물 받아 소장했던 포해 김정규의 셋째 아들이다. 김씨는 생전에 선친이 소중하게 여기던 이 병풍을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하기로 마음먹고 직접 대구시에 연락했고,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이 작품을 확인한 후 기증절차를 밟았다.

병풍에 글을 쓴 죽농 서동균은 근·현대기에 활동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수묵화가이다. 이상화시인이 선물했다는 포해 김정규는 합천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1924년 대구노동공제회 집행위원이었고, 일본에 유학해 주오대학, 메이지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신간회에서도 활동한 민족 지사이다.

이 병풍이 제작될 당시인 1932년에는 서동균과 이상화, 김정규가 30대 초중반의 청년이었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던 대구의 젊은 엘리트였으나 이들의 친분관계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었다.

하지만 이상화가 10폭이나 되는 대작 병풍을 부탁할 만큼 서동균과는 막역한 사이였고, 김정규는 이상화로부터 이런 대작을 증정 받을 만한 인물이었음을 이 병풍이 알려준 셈이다.

3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병풍기증행사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이원호 이상화기념관장, 김종해 기증자,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
병풍기증자인 김종해씨는 “선친께서 상화시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병풍이라고 지극히 아끼셨다”며 “병풍을 보며 금강산 구곡담 시를 직접 따라 쓰기도 할 만큼 좋아하셨다”고 했다. 또 “독립운동을 하신 병풍속 등장 선대 어르신들의 뜻이 대구에 다시 돌아와서 빛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원호 이상화기념관장은 “선대 어르신들이 독립운동하던 때 처럼 격동기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젊은 사람들도 그 분들의 뜻을 이어 대의를 위해 봉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답했다.

서화연구자 이인숙 박사(경북대 외래교수)는 “이 병풍은 일제강점기인 근대기 대구가 보유한 최대의 자산 중 하나인 이상화의 국토에 대한 생각, 교유 관계, 문화 활동을 알려주는 유물”이라며 “근대기 대구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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