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노란 비옷/ 임수진

~어느 유모의 비가~

… 남편은 프로농구선수였다. 갑자기 루게릭 병이 발병하여 집에서 쉬고 있다. 화장실을 가다가 주저앉았고 밥을 먹다가 수저를 떨어뜨렸다. 하루가 다르게 근육이 빠졌다. 큰 손은 녹슨 갈퀴 같고 다리는 왜가리 같다. 암울하다. 시어머니는 그 불운을 내 탓으로 돌렸다. 집에 사람을 잘못 들여 살을 맞은 거란다. 병을 고쳐내라고 억지를 썼다.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이 쓰러지자 살림살이가 궁색해졌다. 나는 마트에서 일했고, 시어머니는 종이를 주워 팔았다. 삶이 고달플 때면 시어머니는 나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병증이 악화되자 그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애가 들어섰다. 고민하다가 5개월을 넘겼다. 아이가 희망이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낳기로 마음먹었다. 배가 불러와 마트 일도 그만두었다. 미래가 없는 가운데 새 생명이 태어났다. 애기를 곰팡이가 득실대는 반지하에 살게 할 수 없었다. 목돈을 받고 유모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햇빛이 잘 드는 2층 남향집으로 옮긴 후, 나는 고용주의 집에 입주를 했다. 안주인은 시내 국문과 교수였고, 그 남편은 지방대학의 건축과 교수였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집에 와서 다음 월요일에 지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가사노예와 다름없었다. 안주인은 민감하고 유별났다. 마흔에 어렵게 얻은 아이라 그런 모양이다. 매주 금요일 아파트 팔각정에서 딸을 몰래 만나기로 되어 있다. 남편에게서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보채는 애를 억지로 재우고 팔각정으로 나갔다. 남편이 딸을 안고 있었다. 딸을 받아 젖을 물렸다. 남편은 꺽다리 바람풍선 같다. 딸이 걸음마를 할 때까지 살고 싶단다. 지나던 남자가 힐끔거렸다. 뒤태가 눈에 익었다. 집에 돌아오니 바깥주인이 우는 애를 안고 있었다. 잠이 깼던 모양이다. 애를 두고 돌아다닌다고 투덜거렸다. 팔각정에서 수유하는 광경을 봤다고도 했다. 일러바치지 않는 대신 뭔가 바라는 눈치다. 서재로 커피 한잔을 부탁했다. 커피 잔을 책상 위에 놓으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내 가슴에 머물렀다. 황급히 서재를 빠져나왔다. 애기 옆에 누워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내리누르는 듯하다. 둥글고 단단한 것이 잡혔다. 그가 가슴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식욕과 수면욕 그리고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식욕과 수면욕은 한 개인의 욕망인 반면 성욕은 상대방이 있는 욕정이라는 점에서 복잡 미묘하다. 성욕은 남녀 공히 나타나는 욕정이지만 관심을 갖고 잘 살펴보면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남자는 늑대다. 욕망에 사로잡혀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우성 유전자 선택이란 2세에 대한 배려가 미진하고 부족하다. 시도 때도 없이 대충 껄떡거리고 성급하게 들이댄다. 일단 저질러놓고 본다. 여자는 여우다. 경쟁에서 살아남을 우성 인자를 가졌는지 계산해본 연후,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한 상대만 유혹한다. 돈이든 능력이든 힘이든, 자신의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해야만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허나 인간은 본능만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이성과 도덕성이란 강력한 조정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의 궁박을 기화로 대책 없이 들이대는 남자의 모습은 부끄럽고 참담하다. 여자는 노란 비옷을 생각한다.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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