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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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안개 자욱한 아침, 갖가지 꽃이 가득한 화훼단지를 지난다. 유난히 일찍 문을 열어두고 항상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의 꽃집이라 마음이 어수선해질 때면 한 번씩 들러 위로받곤 하는 곳이다. 오늘은 색색의 카랑코에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지나는 길손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노랑은 노랑대로 빨강은 빨강대로 알록달록한 꽃들은 따로 모여서 완벽한 조화를 이뤄 웃음을 머금는다. 사시사철 꽃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 꽃집의 주인은 정리를 얼마나 잘하시는 지, 정말로 정리의 최고 달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철마다 피고 지는 꽃과 함께하는 인생, 참 곱고 마음마저 예쁘지 않겠는가, 언젠가 하루만이라도 바꿔서 살 수 있는 날이 있다면 꼭 한번 그 역할을 대신해보고 싶을 정도이니.

코로나19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제는 3차 유행 조짐마저 보인다. 그러다 보니 바깥 활동이 쉽지 않다. 자연히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어질러진 집의 모습에 신경이 쓰인다. 한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정리 프로그램이 인기인 모양이다. ‘신박한 정리’라는 예능 프로다. 미니멀하게 사는 여배우와 맥시멀리스트 개그우먼이 나오고 멋진 남자 배우가 양념 역할을 하면서 집 정리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것이 그렇게 재미있다고 지인들의 SNS가 난리다. 한 지인은 유튜브의 요약본을 매회 보내주면서 꼭 보라고 그리곤 확인까지 해서 할 수 없이 열어보았다. 마침 그 회에서는 여리게 생긴 정리프로그램 당사자인 집 주인이 정리된 집을 보고는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 아닌가.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얽힌 추억과 사연이 생각났을 것이고, 그것을 되새기고 털어내고 정리하면서 감정이 북받쳤던가 보다. 물건을 비워내고 또 그 물건을 들어낸 자리에 채워 넣을 그 무엇을 생각하면서 인생을 다시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지 않았으랴.

공간크리에이터라는 전문 상담자는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집 주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요구에 맞게 재구성하고 또 사는 데 꼭 필요한 것과 욕구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 비워내도 될 것들을 스스로 나누게 해 잘 정리하게 해준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것이 내가 꼭 필요해서 가진 것이 아니라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서, 언젠가 쓰일지도 몰라서 가지고 있다 보면 어느새 공간만 차지하게 되고 또 그것에 치여 정작 중요한 것 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산다는 것이다. 예능프로라고 여기며 가볍게 봤지만, 그 프로그램에는 보면 볼수록 심오한 의미가 내포된 것 같아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내 주변까지 돌아보게된다.

언젠가 우리가 이 공간을 비우고 훌쩍 떠나는 날이 닥치면, 다른 사람 또는 자녀들이 그 물건들을 치우느라 고생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또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많이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게 된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야말로 집콕 시대다. 예능프로그램인 ‘신박한 정리’가 빛을 발하는 시대다. 그 프로를 기획한 연출자는 말한다. 나를 위한 집에 내가 아닌 물건들이 사는 경우가 많다고. 정리를 통해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보자는 것이 그들이 ‘신박한 정리’를 기획한 의도라고 한다. 상으로 받은 트로피까지 비웠다고 하는 한 미니멀 리스트 여배우는 말한다. “비우면 삶이 단순해져요. 나한테 진짜 필요하고, 소중한 것만 남고, 그것들을 더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게 돼요.” 정말 그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비움은 삶의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행위이지 않은가. 신박한 정리는 물건을 ‘필요’와 ‘욕구’로 나눠 정리하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물건 외 그저 갖고 싶은 것은 비움의 대상으로 여긴다. 신기하게도 물건을 버리는 순간, 인생도 정리되기 시작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묘하네. 인생을 돌아보게 하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은 참으로 묘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집 정리만 했을 뿐인데, 인생이 정리되고 삶이 바뀐다고 하니 말이다.

무엇에 둘러싸여 살고 싶은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내가 가진 물건 중 이것이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없어도 되는가? 꼭 필요한 것이 뭔지 모른다는 건 내 삶에서 진짜 소중한 걸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 19로 우울해하는 대신, 내게 꼭 필요한 것에 대한 ‘마법의 정리’ 시간이 되기를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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