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청 세무과 정윤희 주무관

▲ 대구 서구청 세무과 정윤희 주무관
▲ 대구 서구청 세무과 정윤희 주무관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코로나를 뚫고 온 사랑’ 그것은 팔순이 넘은 할머니로부터 비롯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자가격리되신 분들과 전화 상담을 하며 불편함이 없으신지 살피는 일을 할 때였다.

그중 팔순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찾아올 가족이 없어 혼자 살고 계셨다.

코로나가 뭔지, 당신이 왜 2주 동안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시는 상황에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계시던 터라 내 전화를 아주 살갑게 받아 주셨다.

할머니의 음성에서 누군가의 관심과 사람 내음이 많이 그리웠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고 역시나 이렇게 오랜만에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고 말을 걸어주는 것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어느 날 그렇게 전화를 반갑게 받아 주시던 할머니가 그러신다.

“선생님요, 나는 아프지도 않고 이제 죽어도 괜찮응께 나랏일 하느라 바쁘실 텐데 이 늙은이한테 비싼 전화비 낭비해가며 전화 고마 하이소”

대화할 사람이 그리웠다며 아침 반찬을 뭘 해 먹었는지, 사소한 일상사도 늘어놓았던 할머니의 이 말은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뭉클함으로 남아 있었다.

언제 전염병이 생길지 몰라 두려워하셨고 잘못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조차 반갑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께서 당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그 고운 마음과 ‘나랏일’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콕 찔렀던 거다.

연약한 할머니조차 ‘나랏일’하는 나를 배려해 주시는데 체납세 징수업무를 보고 있는 나는 과연 ‘나랏일’하면서 주민들을 위해 어떤 배려를 해주었는가 물음표를 던져보았다.

내가 세무공무원을 하면서 과연 진심으로 납세자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가?

코로나로 인해 예전보다 몇 배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납세자의 심정을 헤아리기는커녕 그저 체납액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이 떠오른다.

그분들의 한숨 섞인 하소연을 외면하고 그저 세금을 받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전화로 인해 내가 하는 나랏일은 납세자를 위한 ‘나랏일’일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세금을 열심히 받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세무과를 방문해 고함과 욕설을 한바탕 내뿜는 분들이 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결론은 그분들도 세금을 내고 싶지만 먹고사는 게 힘들다는 거다.

나를 향한 욕설이 아니라 사는 게 힘들다는 하소연이며 세상에 대고 외치는 힘없는 소리일 뿐이다.

요즘같이 더욱 힘든 때에는 납세자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주는 것도 체납액 징수 이상의 ‘나랏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코로나19는 진행 중에 있고 많은 분들이 힘듦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만 같던 할머니의 배려와 사랑이 골목 구석구석에 살아 있기에 우리 모두 잘 견뎌내고 있다고 감히 짐작해본다.

끝으로, 나에게 따뜻한 사랑과 깨달음을 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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