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힘들지 않은 때가 없었고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 혹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둥 카르페 디엠이라는 둥, 그러니까 위기이거나 중요한 시기거나 반대 이야기지만 전제는 마찬가지다. 언제나 위기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우리 사회가 어렵고 우리나라가 걱정스럽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는 후퇴하고 안보는 위태롭다.

마치 학창시절, 언제나 ‘이번 시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닦달하던 담임선생 꼴이다. 담임선생의 공갈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라는 최대 관문에 이를 때까지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취업 시험이 있었으니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어느 한 순간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설악산 산행 때였다. 한계령에서 소청 중청 대청봉을 거쳐 양폭산장이 있는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처음 가는 코스여서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일행은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이제 저 고개만 넘으면 된다. 마지막 고비다’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고비는 산을 넘어도 또 있었고 내리막이라고 쉽지 않았다. 지치고 힘들었다. 그때마다 마지막 고비란다. 알면서도 속고 또 속았다.

코로나19가 도무지 숙지지 않은 가운데 맞은 올 한가위는 고향 찾지 말자는 캠페인으로 시작해서 방콕으로 끝났다. 그래도 코로나는 끝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지금이 가장 위기라고, 이번 추석 연휴를 잘 보내야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했다.

방역을 총괄하는 정부와 자치단체는 물론, 민간에서조차 서로 만나지 말라고 방송하고 광고하고 했지만 코로나는 비웃는 듯했다. 그래서 시중에는 잘못한 것 많고 잘한 것 없는 정부가 국민들이 모여 정부 정책과 국정운영을 비난하고 성토할까 두려워 아예 국민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금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위기라는 말은 정치권에서 즐겨 써온 국민협잡용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공갈에 넘어갈 국민도 없지만 권위주의 시절, 툭 하면 불거져 나오는 것이 북한의 남침설이었다. 북한에서 생긴 작은 동정 하나에도, 신무기 개발 소식에도, 훈련에도, 김일성이, 그 아들 김정일이 신무기를 개발했다고, 핵을 개발했으니 곧 남침해 올 것이라고 말이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았다. 심지어는 금강산댐을 개발해서 수공으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든다고도 했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도 했다. 위기라며 라면이며 일회용 부탄가스며 생수를 사재기하던 성급한 시민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망하면 끝이다. 사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어느 한 순간인들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그 순간순간을 잘못 하면 그것으로 끝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다음 고비는 없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의 경제대통령으로까지 칭송 받는 그의 생애는 고비마다 혁신을 요구했고 삼성을 그 변화의 중심에서 세계적 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럴 때마다 ‘지금이 위기’라고 그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임원들을 소집해놓고는 ‘결국은 내가 변해야 한다’며 변화를 강조했다. 그리고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는 다 바꿔야 한다고까지 극단적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1995년 구미 삼성전자에서 애니콜 15만대를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불량률 높은 제품으로는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다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쇼를 벌인 것이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반전을 통해 삼성은 애니콜 신화를 창조한다. 그는 2007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는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샌드위치 신세다”라며 특유의 위기론을 내놓았다. 2010년 경영에서 복귀한 뒤에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라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채근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된 뒤에도 삼성은 늘 위기라고 했고, 그때마다 변화를 통해 국면을 돌파했던 그도 영면했다. 이제 그에게 더 이상 위기는 없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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