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삼성 이병철 창업자는 1938년 3월1일 대구 인교동에서 삼성상회를 열었다. 마산에서 곡물상을 하다가 실패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인재를 가장 중시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애초 쓰지 않았고 일단 믿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고 과감하게 맡겼다. 와세다대학 시절 사귄 친구 이순근을 삼성상회 지배인으로 발탁해 경영 일체를 일임한 일화는 그 실천이었다. 이순근 지배인은 삼성상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음으로서 그 신뢰에 보답했다. 이러한 인재중심경영은 시종일관 지켜졌다.

삼성상회가 순풍에 돛단 듯 번창하자 이병철 회장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양조업에 진출해 대박을 치면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것이다. 해방이 되자 사업보국이란 측면에서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다. 1954년 대구에서 삼성의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돈병철로 불리며 거부의 대명사가 됐으나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해 전자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금성사가 선도기업으로 국내 가전시장을 장악한 상태라 삼성의 뒤늦은 전자산업 진출은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병철 회장의 성공은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입증해준 셈이다.

이건희 회장은 창업자의 3남이지만 1987년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등극했다. 장남과 차남의 하극상에 힘입어 어부지리로 후계자가 된 점도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사에서 ‘초일류기업’이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삼성의 목표와 진로를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 이는 회장으로서의 자격과 실력을 맛보기로 살짝 보여준 터였다. 아울러 삼성창업자의 인재를 보는 안목에 기대를 갖게끔 하는 단서로 작용했다.

‘자신부터 바꾸라.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집약된 혁신경영은 1993년의 신경영대장정으로 나타났다. ‘초일류기업’이란 비전을 달성하기위해 뼈를 깎는 혁신을 시작한 것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초일류는커녕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근 두 달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강연을 진행했다. 경쟁기업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그를 통해 청출어람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반도체, 휴대폰, TV는 세계 일등으로 올라섰다. 위기를 먼저 절감하고 대응한 덕분에 기회를 잡은 것이다.

‘양보다 질’이라는 품질경영은 혁신의 또 다른 콘텐츠다. 1995년 구미사업장의 ‘애니콜 화형식’에서 휴대폰, 팩시밀리 등 불량품 15만여 개를 부수고 불태웠다. 500억 원 상당 제품들이 연기로 사라졌다. 이 놀라운 퍼포먼스는 삼성브랜드를 최고 품질을 가진 일등제품으로 끌어올린 상징적 이벤트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휴대폰의 국내시장점유율이 올라가고 세계시장 공략에 성공한 밑바닥에 이건희표 품질경영이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1988년에야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다. 이 회장은 “한 사람이 휴대폰 1대를 보유하는 시대가 온다”며 무선단말기를 삼성전자의 미래사업으로 선정했다. 그의 예측대로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생활하는 세상이 됐고 스마트폰은 삼성의 주력상품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이러한 성과는 그의 뛰어난 통찰력과 남다른 예지력이 낳은 결실이다.

이 회장은 인문학과 디자인의 중요성도 일찌감치 간파했다. 인문적 소양을 가진 인재와 뛰어난 디자이너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의 스마트폰과 컬러텔레비전이 항상 한발 앞서가는 디자인과 콘텐츠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도 세련된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그 속에 스며있는 인간존중의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사회엔 문화가 경쟁력이라는 그의 예언도 현실이 됐다. 방탄소년단의 경이로운 활약상을 보며 미래를 읽는 그의 눈에 그저 신통방통해 할 뿐이다.

삼성임직원은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 회장의 리더십이 50여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간접적인 전후방연관효과까지 감안하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렸다. 한 명의 천재가 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시대를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이병철 회장이 창업에 성공한 기업가라면 이건희 회장은 수성에 성공한 기업가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고 한다. 이 회장은 수성을 넘어서서 세계 초일류기업이란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올린 걸출한 위인이다. 그도 인간인 이상 그 허물이 없을 수 없다. 그 공에 비하면 그 허물은 깃털처럼 가볍다. 가벼운 허물을 두고 3류 행정과 4류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 회장은 비록 떠났지만 제 갈 길을 잘 가도록 삼성을 힘껏 응원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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