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삼국유사 기행 (84) 남백월산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당나라 황제의 연못에 나타난 신라의 땅 백월산
처자를 버리고 득도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마산리의 백월산의 해발 428m 고지. 백월산은 삼국유사 전설이 서려 있는 명산으로 알려져 전국에서 등산객과 학자들의 방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백월산 정상에 표석이 서 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목적이 민족 자긍심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남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편이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다고 볼 수 있다.

당나라 황제가 조성한 연못에 아름답고 신비스런 풍경의 사자암이 나타나, 황제가 화공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 그 신성한 땅을 찾게 했다고 한다.

이는 신라 땅에 그 대단한 복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대목이다.

또 평범한 청년들이 어느 날 수련하기로 마음먹고 백월산에서 부처가 됐다는 이야기로 신라에는 뛰어난 인재가 넘쳐난다고 은근히 자랑한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천30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백월산을 둘러싼 창원은 복된 땅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다.

낙동강 줄기가 여유롭게 흐르고 있고, 동서남북으로 에워싸고 있는 산들은 여인이 하늘을 보고 누운 형상의 길지라는 해석을 들려준다.

지금도 백월산에는 그 맥을 이은 절이 향불을 피우고 있고 전설의 현신을 꿈꾸며 수련하는 도사들도 가끔 만날 수 있다.

백월산은 해발 500m에도 못미치는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제법 험준하고 능선이 가파르게 경사가 급해 오르기가 쉽지 않다. 등산길 곳곳에 등산객들이 하나씩 올려 쌓은 돌탑들이 보인다.


◆삼국유사: 남백월산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백월산 두 성인의 성도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의 북쪽에 있다.

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솟아있고, 수백 리 이어지는 참으로 거대한 자태이다.

예부터 노인들이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당나라 황제가 연못을 하나 팠지.

매달 14일에 달빛이 환하게 밝을 때 사자처럼 생긴 산의 바위 하나가 꽃 그림자 사이에 은은히 비추며 연못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야.

황제가 화공더러 그 모습을 그리게 하고, 사신을 시켜 천하를 돌며 찾게 했어.

우리나라에 이르러 이 산을 보니 커다란 사자암이 있고, 산 서남쪽 2보쯤에 산이 셋 있는데 이름이 화산이야.

그림과 아주 비슷했지. 그러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 신발 한 짝을 사자암의 정상에 걸어놓고 사신들은 돌아가 아뢰었지.

신발의 그림자가 연못에 나타나는 것이야. 황제가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백월산이라 했어. 그런 다음에 연못에는 그림자가 사라졌어.”

신라시대 남사의 유적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남사라는 글이 양각된 기와가 발견되는 곳에 2002년 절을 지어 남사라고 칭했으나 2009년 억불사로 개칭하고 남사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사찰. 남 사는 일제강점기에 폐사했다.


산에서 동남쪽 3천 보쯤 거리에 선천촌이 있다.

그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둘 다 풍채가 평범하지 않고 이 세상 밖의 뜻을 품으며 친구사이로 가까이 지냈다.

나이가 스무 살쯤 됐을 때 마을의 동북쪽 고개 너머 법적방에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남쪽 치산촌 법종곡의 승도촌에 오래된 절이 있는데 머무를 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대불전과 소불전 두 마을에 각각 살았다.

그들은 모두 아내를 데리고 살면서 생계를 꾸리며 서로 오갔지만 속세를 떠나려는 뜻을 잠시라도 잊지 않았다.

두 친구는 서로 말했다.

“부처님을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돼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아야지.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으니 세상에 묶인 끈을 벗어버리고 더할 수 없는 도를 이뤄야 하네. 먼지 날리는 세상에 코를 박고서야 어찌 세상의 무리들과 다름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 깊은 골짜기에 숨기로 했다.

밤에 꿈을 꾸는데 백호광이 서쪽에서 오더니 빛 가운데서 금빛 팔이 드리워져 두 사람의 이마를 만졌다.

깨어나 꿈 이야기를 하자 두 사람이 똑같았다.

오래도록 감탄하다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으로 들어갔다.

백월산 정상 막바지에 설치된 시설물. 백월산 등산로는 경사가 가팔라 창원시가 곳곳에 밧줄과 시설물을 설치했다.


박박스님은 북쪽 마루의 사자암에 자리를 잡고, 부득스님은 동쪽 마루의 돌무더기 아래 물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각기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열심히 미륵보살을 찾고, 박박은 한마음으로 미타보살에게 예불을 드렸다.

3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경룡 3년 기유년(709)의 4월8일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8년이었다.

저물 무렵 몸매가 아주 빼어나고 그윽한 기운을 풍기는 스무 살쯤 된 여자가 문득 북암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했다.

박박이 “절이란 깨끗이 지키는 것을 일삼는 곳이오. 그대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빨리 떠나시고 이곳에 머물지 마시오”라고 말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낭자는 남암으로 가 앞에서처럼 청했다. 부득이 여자에게 “이곳은 여자가 와서 더럽힐 곳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지요. 하물며 깊은 산골에 날마저 저물었으니 어떻게 소홀히 대하리요”면서 암자 안으로 맞아들여 머물게 했다.

백월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바라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가 있는데 등산객들은 사자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밤 깊도록 맑은 마음을 지키며 등잔불 아래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웠다.

그런데 밤이 이슥해질 무렵 여자가 “제가 하필 아이를 낳으려나 봅니다. 스님께서 거적대기를 좀 준비해 주시지요”라고 부탁했다.

부득은 애처로운 마음에 등불을 가만히 피워놓았다.

여자는 아이를 낳더니 목욕물을 부탁했다.

노힐부득은 두려운 마음이 엇갈렸으나 어여삐 여기는 마음은 더할 나위 없었다.

항아리 욕조를 마련해 여자를 거기 앉히고, 새로 물을 끓여 씻겼다.

그러자 욕조 안의 물이 향기를 가득 피우면서 금빛의 즙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노힐이 크게 놀라자 여자가 “우리 스님도 여기서 씻으시지요”라고 권했다.

노힐은 사양하다가 이에 따랐다.

문득 정신이 상쾌하고 맑아지면서 피부가 금빛이 됐다.

그 곁을 보았더니 어느새 연대가 하나 나타났다.

여자는 거기 앉으라고 권하며 “나는 본디 관음보살이오. 스님이 대보리를 이루도록 와서 도운 것이라오”라고 말을 마친 후 사라졌다.

박박은 “부득이 오늘밤 분명 계를 더럽혔을 것이야. 가서 비웃어 주어야지”라며 와서 부득을 보니 연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돼 밝은 빛을 내며 몸은 금으로 꾸며져 있었다.

저절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고 연유를 물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백월산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전설의 땅으로 추정되는 곳에 사찰이 최근에 건립돼 향사가 이어지고 있다.


노힐부득이 연유를 설명하자 박박은 “내가 눈에 씌인 것이 있어 대성을 만나고도 바로 모시지 못했구먼. 그대는 지극히 인자해 나보다 먼저 이뤘네”라고 탄식했다.

“욕조에 즙이 남아 있네. 씻을 수 있을 거야.”

박박이 씻자 부득처럼 무량수불상이 돼 두 불상이 우뚝 마주보고 앉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며 “희귀한 일이 일어났어. 희귀한 일이”라며 감탄했다.

두 성인은 설법을 베풀고는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천보 14년은 을미년(755)인데 신라 경덕왕이 즉위해 이 이야기를 듣고 정유년(757)에 사람을 보내 큰 절을 짓고, 백월산 남사라 불렀다.

백월산 중턱쯤에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축대가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성도기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백월산 기슭의 선천마을에 각자 가정을 이루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부득과 박박은 일을 마치고 저녁이면 만나서 농사 계획과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어느 날 두 친구는 비보를 접했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함께 마음을 주고 있었던 여인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홀어머니를 혼자 부양하면서 두 청년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와 산책을 나갔다가 빗길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모녀가 함께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부득과 박박은 서로가 아끼던 여인의 장례를 치르고 삶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했다.

“우리는 모르고 왔던 것처럼 갈 곳이나 갈 때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삶의 궁극은 무엇인지 깨우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밥벌레와 다를 바 없다”며 “머리를 깎고 공부에 매진해 답을 찾자”고 다짐했다.

깊은 삶의 의미를 찾기로 약속을 한 두 친구는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와 백월산 깊숙한 계곡으로 들어갔다.

둘은 북쪽과 동쪽에 각자 거처를 마련하고 잠을 설쳐가며 수련에 몰입했다.

백월산 정상 부근에서 바라보는 창원시가지.


부득과 박박은 먹는 것조차 잊었다.

절에서 가져온 관음과 미륵상을 걸어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삶의 끝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했다.

둘은 씻는 것은 물론 먹는 것도 잊고 오로지 도를 닦는 일에 몰두했다.

청년 둘이 똑같이 열흘 만에 쓰러졌다.

그런데 그들의 머리 위로 빗물이 쏟아져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옆자리에 신비스런 향이 나는 과일이 놓이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른 채 둘은 과일로 공양하며 더욱 정진했다.

그렇게 꼬박 3년이 지난 어느 날 어여쁜 여인으로 분장한 관음보살이 이들의 거처에 나타나 마음을 시험했다.

그러나 이미 경지에 이른 그들은 미색에 혹하지 않았다.

관음보살은 그들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했다.

선천마을 전체로 무지개 한 쌍이 7주야 크게 원을 그리며 걸렸다.

마을 사람들이 무지개를 찾아가니 두 성인이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인이 된 둘은 마을사람들에게 한차례 법어를 남기고 함께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

소식을 들은 왕이 그들이 수도하던 곳에 절을 지어 불사를 길게 이어가게 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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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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