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일요일인 10월11일은 ‘책의 날’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년 4월23일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정된 ‘책의 날’은 모르고 있다. 34회째인 올해 책의 날 기념식은 13일 열린다. 이날 기념식의 주요 행사는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들에게 훈장과 대통령 표창 등을 시상하는 것이다. 책의 날이 출판계의 기념일로만 치러지면서 시민들에게 외면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책의 날은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의해 1987년 제정됐다. 책의 소중함과 책 읽는 즐거움을 널리 일깨우기 위해 기념일을 정하자는 제안에 따라 출판학계, 서지학계, 도서관계, 출판계, 언론계를 대표한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책의 날 제정을 추진했다. 위원회는 팔만대장경 완성일인 10월11일과 고려 국자감 서적포 설치일인 4월11일 중에서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안을 두고 각계각층에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팔만대장경 완성일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10월11일을 책의 날로 정한 이유는 당시 책의 날 선언문으로 채택된 ‘책의 날을 받드는 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책은 마음의 밭을 갈아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슬기의 높이를 돋군다’로 시작된 선언문은 ‘이에 우리는 책의 가없는 뜻을 알리고, 크나 큰 고마움을 기리도록 우리의 자랑인 팔만대장경이 나온 시월 열 하룻날을 책의 날로 받든다’로 마무리된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이 우리나라의 출판문화를 대표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현재 남아있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 경판은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 소장돼 있는 재조(再造) 대장경 경판이다.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돼 있던 초조(初造)대장경 경판이 불타버리자 1237년 불력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대장경 경판을 다시 판각하는 대역사를 시작한지 16년 만인 1251년 9월25일(양력 10월11일)에 완성됐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세 번씩 절을 했다고 할 정도로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어졌다. 8만1천258매의 경판에 8만4천개의 법문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린다. 팔만대장경 경판이 보존돼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반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우리나라 ‘책의 날’보다 8년 늦은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됐다. 유네스코는 이를 계기로 독서 및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소유권을 보호하는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날짜가 4월23일로 결정된 것은 책을 사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의 축제일인 ‘성(聖) 조지의 날(St. George's Day)’과 1616년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 이 날인데서 유래됐다.

현재 스페인을 비롯해 80여개 국에서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책과 장미의 축제가 동시에 펼쳐지고 영국에서는 이 날을 전후해 한 달간 부모들이 잠자리에서 자녀들에게 20분씩 책을 읽어주는 독서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2년 ‘독서의 해’를 맞아 책을 선물하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의 공모를 통해 이 날의 애칭을 ‘책 드림 날’로 정했다. ‘책 드림’은 ‘책을 드린다’란 뜻과 함께, 영어 ‘Dream’으로 ‘책에서 꿈과 소망, 희망을 찾는다’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문제는 ‘책의 날’이든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든 독서문화를 진흥하고자 제정됐지만, 하향곡선을 그리는 우리나라의 독서통계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독서인구 비중은 50.6%로 2013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또한 독서인구 1인당 평균 독서권수는 14.4권으로 최근 10년 이래로 가장 낮았다.

게다가 출판시장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19 출판시장통계’에 따르면 주요 출판사는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거뒀고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도 괜찮은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지역출판사를 포함한 소규모 출판사와 오프라인 기반의 중소형 지역서점은 역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쪼록 오는 16일 개막되는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을 통해 지역출판의 가치가 시민들에게 인식돼 우수한 지역의 기록이 생산되고, 독서문화가 확산되길 소망한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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