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천영애의 영화산책…에릭 바르비에 ‘새벽의 약속’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

시인 천영애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을 2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인 로맹 가리는 자신의 나이 66세 때 권총 자살을 하면서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같은 사람”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리고 유서의 끝에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고 적었다.

1956년, 로맹 가리라는 본명으로 쓴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문학상을 받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그는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다. 그래서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다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두 번째 공쿠르 문학상을 수상한다.

사람들은 에밀 아자르란 신예 천재 작가가 탄생했다며 환호했다. 로맹 가리는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무명 작가의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전 세계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태생적으로 불행한 사람이었다. 혼자 남은 어머니는 러시아계 유대인이었던 로맹 가리를 데리고 어릴 적 프랑스 니스로 이주한다. 단지 로맹 가리의 앞날을 위해서였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엄청나게 열정적이었던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니스에 정착한다. 영화 ‘새벽의 약속’이란 제목은 로맹 가리의 자서전인 ‘새벽의 약속’을 영화화한 것으로 그가 어머니의 지원으로 어떻게 위대한 소설가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극성이라 할 어머니는 로맹 가리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자주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넌 위대한 소설가가 될 거야.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우리의 시각으로 봐도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엄청나게 극성인 어머니였다. 사사건건 로맹을 통제하려 드는 그녀는 아마도 그의 영혼마저도 통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이자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로맹에게 어머니의 극성은 힘이 되었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로맹에게 매주 편지가 온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3년 전에 죽었다. 그녀는 수많은 편지를 써서 로맹의 이모에게 매주 로맹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로맹 가리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힘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작가란 것이 누구의 도움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 주던 어머니는 그가 좌절하지 않고 삶을 견뎌내는 이유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면서 찾아오는 삶을 혼자서 버티기란 얼마나 힘겨운가.

영화를 보면 로맹의 삶은 어머니에게 바쳐지고, 어머니의 삶은 로맹에게 바쳐진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보면서 화려한 성공을 꿈꾸고, 그러면서 결핍된 사랑으로 끝없이 사랑을 찾아 헤매고, 그러면서도 작가로서의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끝없이 벗어나고 싶어했던 로맹은 결국 어머니의 바람대로 위대한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결핍되고 왜곡된 사랑은 그의 삶마저도 왜곡시켜 그를 권총자살로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삶은 굴절되었고, 순간순간 직선으로 달린다고 생각했던 삶은 어느 순간에 또 굴절되어 그를 비틀거리게 했던 것이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같은 사람”이라는 유서는 그가 얼마나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프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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