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하늘은 높고 단풍은 날로 붉어진다. 자욱한 안개에 밝게 비치는 햇살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마스크를 쓰고 세 계절을 지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필수품 1호가 돼 함께 하고 있다니. 언제쯤 이 녀석을 던져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 수 있으려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낼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정말이지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얄팍한 한 장의 마스크가 우리의 삶을 이다지도 크게 지배할 줄이야. 급히 나서다가 그 필수품을 챙기지 않아서 다시 돌아간 적도 많다 보니 이젠 여기저기, 구석구석에 마스크를 몇 장씩 비치해두고 언제 어디서든 꺼내서 쓸 수 있게 했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을 지경이 됐으니 그동안 코로나가 지배한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잠시 밖에 나설 때도 휴대폰보다 먼저 챙기는 것이 마스크가 됐다니 그것 한 장이 주는 심적인 위안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까운 지인과의 피치 못할 식사 모임에도 밥을 먹는 잠시의 시간 이외에는 모두 마스크를 한 채로 대화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생활 방역이라는 단어에 단단히 습관이 들고 그것으로 중무장 돼있는 우리들의 일상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진다. 나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할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우리의 도리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이젠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도 많이 줄어들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지는지 결혼식이 가을이 되자 봇물이 터지고 있다. 주말이면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시간 간격도 없이 이어진다. 아직은 마스크를 쓴 하객들, 제한된 인원만 참석하게 돼 그나마 거리 두기를 하는 결혼식이라 마음껏 참석은 못하지만 그래도 식을 올릴 수 있는 신랑·신부에게 마음으로 정성 들여 축하라도 해야지 하면서 성의를 보내곤 한다. 코로나 시대에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을 날을 정해놓고 얼마나 노심초사했겠는가. 한 친척의 혼례식 소식은 봄에 받았던 결혼식 청첩장 일정이 바뀌어 다시 인쇄되어 가을날에 도달했다. 그러다 보니 연거푸 시간 간격을 잘 짜서 참석하여야 해서 주말이면 정신없이 바쁘다. 어려운 시기에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 진심 어린 축복을 보내며 몇 곱절 어려움을 이기고 결혼식을 하는 만큼 더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빌어본다.

아무도 없을 때 행복하다던 사람도 며칠 전에 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에서 그의 입은 함박꽃처럼 됐다. 코로나 시대에 환자들을 보면서 인생을 통달하였던가. 둘이 함께 서로 논의하고 도와가며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며 더없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것 같은 신랑·신부가 되기를 참석한 모든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다.

바람도 계절도 꽃도 산도 하루하루 달라져 간다. 인간도 정물이 아닌 동물이지 않던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서 처음부터 뜻이 잘 맞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티격태격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둘이 함께여서 더 든든하고 또 성장하지 않겠는가. 자식들이 장성하다 보니 선남선녀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 부모님은 그래도 일찍 인생의 숙제를 마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훌쩍 덜 수 있었겠다 싶어서 참 부럽다.

창가에 햇살이 살랑거리는 오후, 커튼에 어른대는 나무의 그림자가 참으로 행복하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면서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활력을 얻지 않겠는가. 내가 아는 사람은 늘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행복은 집에서 삽니다. 익숙한 안온함, 변함없는 편안함은 집에 있어요. 집은 언제나 정다운 얼굴로 우리를 안아줍니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세상은 늘 문밖에 있지 않던가.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새로움을 발견하고 발전의 가능성을 찾아서 나아가야 발전하지 않겠는가. 있는지도 몰랐던 세상은 우리의 편안한 집이 아닌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집을 나서야만 볼 수 있는 세상일 것 같다. 눈부시게 빛나는 바깥을 지금 찾아 나서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기에.

시인도 노래하지 않은가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 겨울에도 낙제는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중략…// 그러므로 아름답다.’

오늘을 꿋꿋하게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껏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높은 하늘과 더 푸른 공기, 더 반가운 얼굴들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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