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므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 제2조2항에 재외국민까지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생명권은 생존의 기초가 되는 천부의 권리이고 재산권은 자유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로서 존립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최근 국가공무원이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고 불태워졌다. 정부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손 놓고 방관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한 의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국가의 의무를 유기했거나 포기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국회 차원에서 특감을 실시하는 등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조사해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그 결과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이 드러난다면 통치권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할 위중한 사안이다.

월북 여부가 논란이다. 망명자를 사살한 것이라 하더라도 불씨는 여전히 남는다. 허나 월북 여부는 핵심이 아니다. 여야가 이 사건을 정쟁의 볼모로 잡아선 미궁 속으로 빠질 뿐이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하고 불태워지는 동안 국군통수권자와 군대가 무엇을 했는지가 관건이다. 현행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다. 이에 의하면 북한은 국가가 아니고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북한은 국토를 불법으로 점유한 무장집단이거나 국가전복세력이다. 북한은 한시바삐 척결해야할 내부 반란세력이다. 반란군이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그 시신을 불 태웠다면 그 즉시 응징해야 맞는다.

허나 현실적으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통치권과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실질적인 국가다. 우리와 전면전까지 벌이고 지금은 휴전상태인 엄연한 국가다. 현행헌법 규정은 선언적일뿐이다. 북한을 국가가 아니라 불법무장세력 내지 반란군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유엔 회원국이기도 하다. 외교부장관이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이 국가라면 북한이 한 행위는 인권유린이자 국제법 위반이다. 이웃나라가 무단히 자국의 국가공무원을 사살하려한다면 그 즉시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국민의 생명을 구할 의무가 발동된다. 이미 국민이 피살되고 그 시신을 불태웠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적을 응징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를 완수하는 길이다. 비록 전쟁이 발발할 개연성이 크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

전쟁을 두려워해선 국민과 국가를 지켜낼 수 없다. 모든 국가가 전쟁을 두려워하긴 매일반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침범을 묵과한다면 먼저 침범하는 나라를 제재할 방도가 없을뿐더러 나라다운 나라로 바로 설 수 없다. 작은 도발에 상응하는 보복행위는 정당방위로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낮다. 상대가 핵을 가졌더라도 핵까지 사용해 항전할 확률은 거의 없다.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 맞고도 가만히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울 각오가 된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은 ‘9·11 테러’를 당하자 즉시 세계를 향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엄포에 그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으로 진군해 그 보복을 감행했다. 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나 범죄는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교훈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켜줬다. 러시아인이 탄 선박이 아덴만에서 해적의 습격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러시아는 대대적 군사작전을 펼쳐 해당 해적을 깡그리 전멸시켰다. 러시아의 보복은 무관용적이고 지나치다 할 정도로 강경했다. 잔인한 면이 있긴 했지만 예외 없는 단호한 응징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자국민을 확실히 보호한다는 메시지를 만방에 전했다. 해적은 러시아 깃발만 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됐다.

단 한 사람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자세로 국민을 지켜주는 나라가 진정한 나라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써가며 평화 시에도 군대를 유지하고, 국민개병제도로 젊은 장정의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을 지켜낼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힘이 있어도 꼭 써야할 때 쓰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플라비우스의 명언이 문득 떠오른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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