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스포츠 경기에서 특별하게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없으면 대게 약한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게 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시나리오는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라는 뒷이야기까지 있어 큰 감동마저 주기 마련이다.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사람들은 환호한다. ‘언더독(under dog) 효과’다. 스포츠나 영화 등에서 우승하거나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적은 팀이나 선수를 ‘언더독’이라고 한다. 반면 이길 것으로 예상되는 강자는 ‘탑독(top dog)’이다. ‘언더독 효과’는 원래 개싸움에서 아래에 깔린 개(언더독)를 응원한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언더독 효과’는 예상을 벗어날수록 더 극적이다. 선거에서 약세인 후보가 유권자들의 동정으로 많은 표를 얻는 경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1948년 미국 대선 때 해리 트루먼이 토머스 두이를 제치고 당선되면서 처음 쓰였다. 당시 해리 트루먼 후보는 사전 여론조사에서 계속 상대 후보에 뒤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언더독’이었던 트루먼이 ‘탑독’인 상대 후보를 4.4%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부동층 유권자들이 해리 트루먼에게 동정표를 던져 판세가 뒤집혔던 것이다.

언더독 효과는 선거판에만 있는 현상도 아니다. 기업에서도 언더독은 중요한 소재이다. 최근 라면시장 점유율에서 진라면이 부동의 1위였던 신라면을 따라잡았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물론 “우리는 1위가 아니다”라면서도 “언젠가는 1위도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맛있는데”라는 차승원이 찍은 진라면의 광고도 한몫했다. 약점을 공개하는 언더독 광고로 친근하게 다가서면서 고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인 게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애플의 광고는 언제나 언더독들이 주인공이다. 전형적인 ‘탑독’인 세계적인 기업이 왜 언더독에 매달리는 걸까. 애플은 언더독으로 시작했기에 뿌리 자체가 언더독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1980년대 탑독은 IBM이었다. 애플은 도전자 입장에서 IBM에 대항하는 반항아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미지를 형성해왔다. 언더독은 스토리텔링을 하기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애플 제품의 타깃을 모든 사람들로 확장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만약 능력 있고 잘생긴 사람들만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광고를 내보낸다면 분명 언더독들에겐 이질감을 느끼게 할 뿐일 것이다.

스포츠에선 ‘칼레의 기적’이 언더독의 반란을 대표한다. 칼레는 인구 8만명의 프랑스 북부 항만도시이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4부 리그 추구팀 라싱 위니옹 FC 칼레는 2000년 5월 기적을 일궈냈다. 슈퍼마켓 주인과 정원사, 항만 노동자가 주축인 순수 아마추어팀인 FC 칼레는 프랑스 FA컵 대회에서 유명한 프로 팀들을 연파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언더독의 반란’을 이야기할 때마다 ‘칼레’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영화에서도 언더독은 주요 소재이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선 호빗 프로도, 록키(Rocky)에서는 록키 발보아가 언더독들이다. 스토리야 뻔하고 결말도 정해져있지만 관객들이 감동하는 건 이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승리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는 영화에서 언더독 캐릭터가 상업성을 담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이건, 비즈니스이건, 스포츠이건 언더독의 반란은 감동이다. 그렇지만 요즘 대다수가 언더독일 수밖에 없는 개개인들을 보면 조금은 착잡해진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10억 원을 돌파했고, 서울에 살면서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가족 모두가 월급 한 푼 쓰지 않고 11.4년을 모아야 한다는 통계까지 나온 마당이다. 대다수 언더독들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우리가 ‘언더독의 반란’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 당장 원룸에서 월세로 근근히 이어오거나 반지하 또는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내일은 ‘탑독’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스포츠나 영화 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수많은 언더독들의 반란 스토리로 감동이 이어졌으면 한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