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언택트 추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불효자는 ‘옵’니다.”

올해 추석 풍경을 한마디로 표현한 강력한 현수막 문구가 온라인을 휩쓸고 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로 시작하는 가수 진방남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1940)에서 ‘웁’을 ‘옵’으로 바꾼 기발한 문구다.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하는 대신 고향에 내려오면 불효자라고 내세웠으니 이보다 더 강력한 카피가 있을까.

지난해까지는 추석 전이면 동네마다 귀성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올해 그 자리는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가 추석 풍속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즐겁고 풍성해야 할 추석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기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추석연휴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연일 호소하고 있다. 오죽하면 정세균 국무총리마저 나서서 “나를 팔아라”라고 까지 할까.

이런 영향인지 실제로 코로나19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한가위 귀향 풍속까지 바꿔놓고 있다. 최근 한국교통연구원의 ‘추석 연휴 통행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은 고속도로 일평균 이동량이 지난해에 비해 28.5%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우려’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일 년에 큰 명절 두 번, 설날과 추석을 기다리던 부모님의 상실감도 클 듯하다. 그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을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터라 고향에 오지말라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을 타들어갈 것이다. 자식들 입장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방역을 위한 마땅한 조치라고 이해하면서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입장이 죄송한 뿐이다. 가려니 불안하고 가지 않으려니 왠지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어찌됐든 이번 추석은 집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집콕족’들이 많아질 듯하다. 어르신들이 겪는 LID 증후군(Loss 상실, Isolation 고독, Depression 우울)도 늘어날 것이다. LID 증후군이란 핵가족화에 따른 노인들의 고독병으로 자녀가 분가해 떠나고 주위에 의지할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손실에 따른 고독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는 증상이다.

이런 와중에 제주도와 강원도 등 유명 관광지는 추석 연휴를 맞아 빈방이 없을 정도로 예약이 꽉 찼다는 소식이다. 귀성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여행은 대폭 늘어났다. 연휴 기간 제주도 방문 예정자는 3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

아이러니다. 고향 부모님을 찾아뵙는 사람들은 불효자이고 추석 연휴를 즐기러 관광지로 몰려가는 사람들은 효자인가. 물론 정부나 지자체에서 나서서 홍보하는 귀성자제는 코로나방역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5일간의 추석연휴를 이용해 국내 여행을 떠나는 ‘추캉스족’(추석+바캉스족)이다. 관광지가 감염 확산의 진원지가 될 확률이 더 커졌다. 귀성도 포기하고 여행도 하지않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외식이나 여가활동은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5일 연휴를 집에만 들어 앉아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귀성자제만을 권고할 게 아니란 말이다. 고향을 찾되 철저한 생활방역 준수, 사회적 거리두기 유지를 홍보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필자도 서울에 있는 아이들의 귀성을 만류했다. 추석 당일 사촌들까지 모여서 이집저집 다니며 함께 지내는 차례도 올해는 그만 두기로 했다. 대신 가족끼리 조용하게 따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바이러스가 추석명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꿔놓았다. 가족친지들의 만남을 코로나19가 빼앗아가는 느낌이다.

비대면 추석, 우울한 명절이다. 고향 방문은 고사하고 추모공원이나 봉안시설까지 폐쇄되거나 제한 운영된다. 더 큰 걱정은 추석명절 풍속도가 이젠 많이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코로나가 종식된다 해도 내년 추석부터는 많이 변할 것이다. 그렇다고 추석의 본래 의미마저 잊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세상은 각박하지만 추석 때 만이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만 같은 넉넉함을 나눴으면 한다. 아울러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고향방문 자제라는 2020년의 추석 신풍속도도 올해 한 번으로 끝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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