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내 고향 왜관읍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고향은 언제나 엄마의 품같이 그리운 곳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입니다. 왜관이라고 하면 낙동강전투, 끊어진 낙동강 다리로 대표되는 한국전쟁이 떠오릅니다. 왜관은 낙동강 방위선의 최대 격전지였기 때문에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지요. 그래서 1950~1960년대에는 터지지 않은 불발탄으로 인해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미군부대 캠프 캐럴이 왜관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왜관(倭館)이라는 지명은 일본인의 거류지를 의미합니다. 일본인 거류지의 대표적인 곳이 동래에 있는 동래왜관이었습니다. 일본인 거류지인 왜관은 주로 일본에 가까운 우리나라 남동쪽 해안에 설치돼 있었지요. 그런데 내륙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칠곡군에 왜 왜관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왜관은 낙동강변에 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장사꾼 일본배가 칠곡군 왜관이 있는 곳까지 들어왔고 칠곡군 낙동강변 선창가에 일본인 거류지인 왜관이 형성됐습니다. 그런데 원래 왜관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습니다. 1905년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왜관읍 지역에 설치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됐다고 합니다.

왜관면이 점점 커지면서 왜관면이 왜관읍으로 승격됐고 칠곡군에는 읍이 두 개가 생기게 됐습니다. 본래 있었던 칠곡군 칠곡읍과 새로 승격된 왜관읍입니다. 그런데 왜관읍이 더 커지게 되면서 칠곡군 군청소재지는 칠곡읍에서 왜관읍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칠곡읍은 나중에 대구시가 광역시가 되면서 대구시로 편입돼 현재의 칠곡지구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칠곡군은 인구 약 12만 명으로 경북도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군입니다.

왜관읍은 카톨릭과 인연이 많습니다. 일제 시대의 탄압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베네딕도 수도원 수사들이 왜관에 모여들어 세운 것이 지금 순심고등학교 옆 동산 위에 세워진 베네딕도 수도원입니다. 저는 어릴 때 저 멀리 동산 위에 높이 자리잡고 서 있는 서구식 건물의 베네딕도 수도원이 피안의 세계처럼 보였습니다. 가을이면 수도원을 둘러싼 노란 단풍잎이 너무 경이로웠습니다.

구상 시인은 왜관에서 살았는데 친형이 카톨릭 신부일 정도로 카톨릭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 입구에 그 당시 구상 시인의 사모님이 순심병원을 열었습니다. 병원건물이 현대식 건물이 아니라 기와집으로 된 한옥식 건물이었습니다. 저의 동네는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들판에 당시로는 현대식인 주택 50채로 된 마을이었습니다. 주로 미군부대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지국장을 하신 아버지 슬하에 60년대에 주택에 살았으니 저의 유년시절은 과수원과 함께 하는 그리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구상 시인은 낙동강변에 살면서 아름다운 시를 많이 지으셨는데 구상 시인이 사셨던 낙동강변에는 지금 구상문학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왜관에는 베네딕도 수도원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왜관읍 낙산리에 있는 백년된 가실성당입니다. 가실(佳室)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으로 가실성당은 정말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멀리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동산에 자리잡은 가실성당을 찾아가면 그 고고하고 퇴색한 성당의 원초적 성스러움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목가적인 풍경 속에 동정녀 마리아의 동굴이 있고 묵상에 잠든 사목관이 있습니다. 가실성당은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고 있어 신자들은 별로 없겠으나 지금은 카톨릭 신자들이 베네딕도 수도원에 피정을 오면 들러서 참배하고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실성당은 팔공산 한티성지까지 이어지는 카톨릭 순례자의 길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관이라는 지명은 그 이름 때문에 현재 시련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칠곡군 주민 일부가 ‘일제강점기에 굳어진 왜관읍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관읍은 칠곡읍, 왜관역은 칠곡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왜관이라는 지명은 그동안 왜관이라는 지명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사람들의 역사도 같이 숨쉬고 있기 때문에 반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휴일에 가족과 함께 베네딕도수도원, 가실성당, 호국의 다리, 매원마을이 있는 왜관읍으로 나들이를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은 관광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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