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려상 수상자 김병락
▲ 장려상 수상자 김병락
산 중턱을 오르자 뿌연 안개를 걷어 올리며 적막했던 성전의 터, 검정 부리 하나를 쑥 내민다.

1천500여 년을 이어오는 승가람임에도 세상에 그렇게 알려지지도 않으면서 경이로움이 스민 그곳에 귀한 문화유산이 있었다.

여름 절집의 운치도 느낄 겸 수미단의 숨은 뜻을 알아보려고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경산 시내를 조금 벗어나 청도 쪽 자동차로 십여 분 달리다 보면 남천면 산전리 이정표가 나온다.

옛 압독국의 젖줄인 남천을 따라 아담한 마을로 접어들다가 모골 길 2km 정도 가면 그 끝인가 싶은 곳, 학의 부리쯤에서 천년고찰 경흥사를 만난다. 열기가 이곳만은 비켜 가는지 제법 신선하다. 도심의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 서 있는 듯하다.

수미단(須彌壇)이 불교 공예품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빠져들게 되었다. 처음엔 부처님을 모시는 단순한 받침대로만 알았다. 수미단의 원형인 수미산은 정토 세계 속 상상의 산으로 부처님의 깨달음과 경외심을 높이기 위한 장식물이란 것도 그때 알았다. 내 머릿속은 온통 수미단으로 가득 찼다.

우람찬 은행나무 앞 명부전에 바로 그 수미단이 있었다. 삼배를 올린 후 법당에 다소곳이 앉았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하는 게 보통이나 이곳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지장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로 모시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처님을 정중하게 받들고 갈 길 몰라 하는 중생을 환하게 맞아 주었다.

수미단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앞쪽엔 게, 용, 기린, 물고기, 개구리, 도롱뇽, 꽃 등 상상과 실제의 동식물이 꿈틀거리고 옆쪽엔 연과 모란꽃 모양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 워낙 고요한 사찰인지라 하나하나에 억겁의 무게가 실린 것 같아 조심스럽다.

경흥사는 은해사의 말사이다. 그래서 보물로 지정된 팔공산 백흥암 수미단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건, 다른 곳에다 조각하여 서로 붙인 게 아니라 앞면과 뒷면을 서로 뚫리게 치밀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원래는 몇 개의 단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한 단뿐이다. 사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단청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어떻게 이런 고운 색상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마력에 깊이 빨려 들어간다.

네 개의 칸으로 된 수미단은, 첫째 칸 왼쪽에 시커먼 게 한 마리가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옆으로 긴 수염을 펄럭이는 황룡은 오른쪽에, 또 청룡은 먹잇감을 왼쪽에 두고 눈을 부라리며 달려가고 있다. 옆에 있는 기린도 긴박감이 넘친다. 무엇이 그 동물들을 필사적으로 달리게 했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사바세계를 표출하지 않았나 싶다.

둘째 칸엔 상상의 동물인 용과 기린의 기백이 넘친다. 꼬리가 하늘로 향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달리는데 수염과 갈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서로 여의주를 쟁취하려는 모습이다. 도롱뇽을 잡아먹으려는 자세로도 보인다. 동 중 정인가, 봄을 상징하는 개구리는 용과 기린 곁에 각 두 마리씩 그 틈바구니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다.

건너 마지막 칸에는 연꽃과 모란 사이로 빽빽하게 풀줄기를 장식해 놓았다. 특이한 것은 꽃을 오붓이 감싸도록 하여 장인의 관찰력과 치밀한 솜씨를 엿보게 한다. 잘 보이지 않는 양 측면엔 동물은 등장하지 않고 한 칸 반 정도로 꽃과 풀로만 장식해 놓았다. 앞쪽의 두 칸보다는 다소 밋밋한 데다 귀퉁이에 수리한 흔적이 있어 당시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말해준다. 본래 모습들이 훼손, 도난당했거나 어느 어두운 창고에 묻혀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 아프다.

그런데 세 번째 칸이 의미심장하다.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을 보지 않고는 다 이해할 수 없었다. 매년 사월초파일에만 개방한다는 그곳, 꼭 찾아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올해 이루어졌다. 과연 보물급답게 한눈에 그 화려함이 전신을 압도한다. 삼단으로 완벽하게 보존된 예술품이었다. 많은 동식물이 등장하는 등 규모 면에서는 뒤지지만, 경흥사 수미단도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고 여겼다. 경흥사 수미단의 세 번째 칸은 연꽃을 사이에 두고 작은 게와 물고기가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그 칸만은 날렵한 동물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전체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칭칭 감은 풀 기둥에 답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또 경흥사를 향해 새벽길을 나섰다. 몸이 반쯤 풀숲에 가려진 게와 물고기 한 마리가 긴박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 그렇구나. 서로 조심하라며 밀어를 나누는 중인가 보다. 절묘하게 연꽃 중간에 드리워진 풀 기둥이 중재하는 걸까, 잠시 쉬어가라는 손짓 몸짓을 보여 준다. 일촉즉발 상황에서 한 발 벗어나 안위를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다.

아, 그건 평등과 조화를 말하려는 게 아닐까. 그러한 것들로 삼라만상에 대자비를 깨우치려고 했음이리라. 우리 선조들이 선과 미를 살려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뛰어났음을 다시금 감탄한다. 비록 수미단 중 일부를 잇대어놓아 그 정체성은 약하다 할지라도 고초의 어려움에도 유산을 굳게 지키려 했던 정신이 눈물겹다.

동학산 기슭, 검정 부리가 댓바람을 타고 잃어버린 가릉빈가의 미소를 실어 오고 있는 듯하다. 그 오묘함, 나는 묵직한 희열감으로 천천히 돌계단을 내려선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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