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을 우리와 함께 한 쌀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지을수록 손해라고 외면하는 벼농사로 부

▲ 이기식 대표가 이앙기에 모판을 싣고 있는 모습. 튼튼한 육묘가 반농사라는 생각으로 건전묘 기르기에 정성을 기울인다.
▲ 이기식 대표가 이앙기에 모판을 싣고 있는 모습. 튼튼한 육묘가 반농사라는 생각으로 건전묘 기르기에 정성을 기울인다.
쌀에게 물었다 “넌 누구니.”, 쌀이 답했다. “나, 이 땅에서 수천 년을 함께 한 가족이자 동지(同志)라고 할 수 있지. 이 땅의 생명창고이기도 해.”

‘민위식위천(民爲食爲天),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쌀은 곧 하늘이었다. 한 그릇의 흰 쌀밥을 위해 피땀 흘려 일했다. 선사시대 유적에서 탄화미가 발견되는 점을 볼 때 쌀은 이 땅에서 길고 긴 역사를 가졌다.

▲ 이기식 대표가 모내기 직전에 잘 자란 모판을 살펴보고 있다.
▲ 이기식 대표가 모내기 직전에 잘 자란 모판을 살펴보고 있다.
쌀이 주식이라고 하지만 쌀밥으로 배를 채우기는 힘들었다. 언제나 서민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앙법(모내기)이 보급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났으나 쌀은 양반들과 지주들의 몫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공출미’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군량미로 빼앗겼다.

1970년대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비로소 쌀이 서민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우리가 쌀밥을 배불리 먹은 것은 50여 년에 불과하다. 이제는 양보다는 맛을 따진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모래사막에서 벼를 재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적도 일구어 냈다.

▲ 이기식 대표가 잘 일은 벼를 한줌 베어들고 있는 모습.
▲ 이기식 대표가 잘 일은 벼를 한줌 베어들고 있는 모습.
가을철 황금빛 들판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은 ‘쌀의 민족’이라는 DNA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벼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생명창고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칠곡에서 벼농사에 올인하는 ‘한백황토쌀’의 이기식(47) 대표를 만나본다. 이 대표는 49만여㎡의 논에 벼를 재배해 연간 4억여 원의 조수익을 올린다. 임차 농지와 위탁영농을 모두 포함한 면적이다. 본인 농지는 6천600㎡에 불과하다.

◆대를 이어가는 벼농사

이 대표는 구미에서 사무용가구 영업을 하다가 2005년 귀농을 했다. 원해서 한 귀농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경북도 농업명장으로 선정된 아버지는 평생 벼농사를 지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농사는 아버지의 일이었다. 농업인으로써 최고의 영예인 농업명장이었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기자 농사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 이기식 대표와 동생인 이자범(39)씨가 잘 익은 벼를 한줌 베어들고 있는 모습. 동생은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4년 전에 합류했다.
▲ 이기식 대표와 동생인 이자범(39)씨가 잘 익은 벼를 한줌 베어들고 있는 모습. 동생은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4년 전에 합류했다.
농장의 규모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돼 있었다. 임차 농지와 위탁영농이 많았다. 특히 위탁영농이 문제였다. 농사를 포기하면 본인의 농사는 물론 믿고 농사를 맡긴 농가들까지 망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수습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이 대표가 직장을 포기하고 농사를 맡았다. 잘 다니던 도시 직장을 포기하고 귀농을 할 때 아내도 말없이 따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짓는 벼농사라 2년 동안은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했다.

▲ 드론으로 막바지 병해충 방제작업을 하는 모습. 드론 조정은 동생의 몫이다.
▲ 드론으로 막바지 병해충 방제작업을 하는 모습. 드론 조정은 동생의 몫이다.
농사일을 배우는 농장 실습생 같았다. 3년째부터는 미숙했지만 혼자 힘으로 농장을 꾸렸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귀농이었지만 이제는 주변에서 인정하는 베테랑 농부로 자리 잡았다.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규모의 경제화로 소득창출

흔히들 벼농사는 돈이 안 된다고 한다. 1천㎡ 당 소득이 54만 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면적 대비 소득액이 다른 작물에 비해 크게 낮다. 같은 면적의 시설재배 오이나 파프리카, 딸기는 1천만 원을 넘는다. 노지고추와 마늘도 200만~300만 원 정도로 높다.

▲ 이기식 대표(밀짚모자)가 드론으로 막바지 병해충 방제 작업을 하는 동생에게 작업지시를 하고 있다.
▲ 이기식 대표(밀짚모자)가 드론으로 막바지 병해충 방제 작업을 하는 동생에게 작업지시를 하고 있다.
단순히 단위 면적당 소득만을 비교하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대표는 “벼농사가 소득이 낮은 것은 맞지만 규모를 늘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작목”이라면서 “손익분기점인 33만㎡를 넘기면 어떤 작목보다 매력적이고 충분히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 이씨 형제가 병해충 방제 작업을 마치고 드론을 정비하고 있다.
▲ 이씨 형제가 병해충 방제 작업을 마치고 드론을 정비하고 있다.
면적은 49만여㎡로 늘린 것도 ‘규모의 경제화’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벼농사는 대부분의 작업이 기계화가 이루어져 혼자서 넓은 면적의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면적 확대에는 어려움도 따른다. 한 대당 1억여 원에 이르는 트랙터나 이앙기 같은 대형 농기계를 구입하는 것이다. 대형 농기계들은 가격은 높지만 효율성이 높아 면적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8조식 이앙기를 이용하면 하루에 2만㎡의 모내기를 할 수 있다.

◆건전 육묘와 소식재배

‘모농사가 반농사’라는 말은 모든 농작물에 적용된다. 튼튼한 모는 고품질과 다수확의 기본이다. 당연히 육묘에 공을 들인다. 통상적으로 육묘는 못자리에서 15~20일 정도 키운 다음 비닐을 벗기고 경화작업을 거친 후에 모내기를 한다. 이때 35일이 넘으면 모내기가 어렵다.

▲ 저온창고에 보관 중인 벼를 보여주고 있는 이기식 대표. 연중 15℃를 유지하는 저온창고에 벼를 보관한다.
▲ 저온창고에 보관 중인 벼를 보여주고 있는 이기식 대표. 연중 15℃를 유지하는 저온창고에 벼를 보관한다.
이 대표는 육묘장에서 키운 모를 마당에 마련한 간이치상장에서 물만 공급하면서 경화작업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45일까지도 모내기가 가능하다. 지난해부터 모의 심는 간격을 넓히고 포기 수를 줄여서 심는 소식재배를 시작했다.

▲ 이기식 대표가 도정작업을 마치고 포장된 쌀을 보여주고 있다.
▲ 이기식 대표가 도정작업을 마치고 포장된 쌀을 보여주고 있다.
빛과 통풍이 잘되어 분얼(새끼치기)이 활발해 포기 수가 줄어도 같은 수확량이 나오는 농법이다. 전용 이앙기를 도입해 3.3㎡당 포기 수를 60주에서 54주로 줄이고, 주당 포기 수를 6~7본에서 4~5본으로 줄였다. 소식재배를 통해 이앙시간과 육묘 량을 줄임으로써 인건비와 종자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둔다.

▲ 이기식 대표와 김왕경 칠곡군농업기술센터 왜관상담역(식량작물 전문가)이 미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이기식 대표와 김왕경 칠곡군농업기술센터 왜관상담역(식량작물 전문가)이 미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경영비 절감은 곧 소득으로 연결된다. 소식재배를 하면 정밀한 물 관리 기술이 필요하다. 일주일 간격으로 파종하는 단계적 육묘를 도입해 노동력을 분산시키는 노력도 기울인다.

◆밥맛 좋은 쌀과 가공시설 GAP 인증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6.7%이지만 쌀 자급률은 100%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양보다 질을 우선한다. 당연히 쌀의 첫 번째 조건은 밥맛이다. 밥맛을 좌우하는 것은 품종과 재배기술, 보관 방법이다.

▲ 이기식 대표와 동생이 도정한 살의 품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이기식 대표와 동생이 도정한 살의 품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대표는 좋은 밥맛을 위해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하이아미’ 품종을 많이 재배하고 질소질 비료를 줄인다. 질소질을 줄이면 수확량이 줄어들지만 좋은 밥맛을 위해 감수한다. 수확시기에도 신경을 쓴다. 90% 정도 등숙됐을 때 수확하고, 연중 15℃를 유지하는 저온창고에 보관하다가 판매 직전에 도정한다.

▲ 모판을 들고 있은 이기식 대표.
▲ 모판을 들고 있은 이기식 대표.
가정에서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좋은 밥맛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흔히들 방앗간을 생각하면 참새와 천장의 거미줄에 달라붙은 먼지를 생각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된지 오래됐다.

이 대표는 200㎡의 소규모 쌀 가공시설이지만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 인증을 받았다. 대형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아닌 소규모 시설에서 GAP인증을 받은 사례는 드물다. 인증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 방금 도정한 쌀.
▲ 방금 도정한 쌀.
집진시설을 설치하고 원료 투입부와 도정부 포장부 사이에 차단벽을 설치했다. 이중문과 방충망을 설치해 외부로부터 해충의 침입을 차단했다. 공정별로 연결되는 관은 모두 스테인레스관으로 교체하고 기둥까지도 녹이 슬지 않는 철판으로 감싸 도정과 포장 과정에서 쌀에 협잡물이 들어가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했다.

▲ 10㎏ 단위로 포장한 황토한백쌀.
▲ 10㎏ 단위로 포장한 황토한백쌀.
도정공장을 식품공장의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이런 시설을 갖추고도 일곱 번 만에 인증을 받았다. 끈기가 없으면 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소비자들에게 맛있고 깨끗한 쌀을 공급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면서 “인증을 받는데 고생은 많았지만 좋은 쌀을 보면 흐뭇하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재능기부와 대를 잇는 농업명장 도전

이 대표는 귀농 후 농장경영이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사회로도 눈길을 돌린다. 작지만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기부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런 기부에는 물질뿐만이 아니라 재능까지도 포함된다.

▲ 방금 도정한 쌀.
▲ 방금 도정한 쌀.
4년 전부터는 착한가게에 가입해 매월 3만 원씩 정기적으로 기부한다. 칠곡군호이장학회에 호이장학금도 2년 전부터 연간 100만 원씩 기탁하고 있다. 특히 농업부문에서 재능기부가 눈에 띈다. 병해충 방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의 논에 자신이 보유한 드론을 활용해 무상으로 방제작업을 해 주는 것이다.

예전에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질병으로 적기에 농사일을 못하는 농가가 있으면 말없이 논을 갈거나 써레질을 해주던 아버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요즘 이 대표가 부쩍 욕심을 부리는 것이 있다. 경북농업 명장에 선정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 농업 명장이 되는 것이다.

▲ 방금 도정한 쌀.
▲ 방금 도정한 쌀.
이를 위해 낮에는 논에서 땀을 흘리고, 밤에는 책상에서 눈을 부릅뜬다. 그것이 생명창고인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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