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을 우리와 함께 한 쌀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지을수록 손해라고 외면하는 벼농사로 부
‘민위식위천(民爲食爲天),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쌀은 곧 하늘이었다. 한 그릇의 흰 쌀밥을 위해 피땀 흘려 일했다. 선사시대 유적에서 탄화미가 발견되는 점을 볼 때 쌀은 이 땅에서 길고 긴 역사를 가졌다.
1970년대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비로소 쌀이 서민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우리가 쌀밥을 배불리 먹은 것은 50여 년에 불과하다. 이제는 양보다는 맛을 따진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모래사막에서 벼를 재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적도 일구어 냈다.
우리의 생명창고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칠곡에서 벼농사에 올인하는 ‘한백황토쌀’의 이기식(47) 대표를 만나본다. 이 대표는 49만여㎡의 논에 벼를 재배해 연간 4억여 원의 조수익을 올린다. 임차 농지와 위탁영농을 모두 포함한 면적이다. 본인 농지는 6천600㎡에 불과하다.
◆대를 이어가는 벼농사
이 대표는 구미에서 사무용가구 영업을 하다가 2005년 귀농을 했다. 원해서 한 귀농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경북도 농업명장으로 선정된 아버지는 평생 벼농사를 지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농사는 아버지의 일이었다. 농업인으로써 최고의 영예인 농업명장이었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기자 농사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대표가 직장을 포기하고 농사를 맡았다. 잘 다니던 도시 직장을 포기하고 귀농을 할 때 아내도 말없이 따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짓는 벼농사라 2년 동안은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했다.
◆규모의 경제화로 소득창출
흔히들 벼농사는 돈이 안 된다고 한다. 1천㎡ 당 소득이 54만 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면적 대비 소득액이 다른 작물에 비해 크게 낮다. 같은 면적의 시설재배 오이나 파프리카, 딸기는 1천만 원을 넘는다. 노지고추와 마늘도 200만~300만 원 정도로 높다.
◆건전 육묘와 소식재배
‘모농사가 반농사’라는 말은 모든 농작물에 적용된다. 튼튼한 모는 고품질과 다수확의 기본이다. 당연히 육묘에 공을 들인다. 통상적으로 육묘는 못자리에서 15~20일 정도 키운 다음 비닐을 벗기고 경화작업을 거친 후에 모내기를 한다. 이때 35일이 넘으면 모내기가 어렵다.
◆밥맛 좋은 쌀과 가공시설 GAP 인증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6.7%이지만 쌀 자급률은 100%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양보다 질을 우선한다. 당연히 쌀의 첫 번째 조건은 밥맛이다. 밥맛을 좌우하는 것은 품종과 재배기술, 보관 방법이다.
이 대표는 200㎡의 소규모 쌀 가공시설이지만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 인증을 받았다. 대형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아닌 소규모 시설에서 GAP인증을 받은 사례는 드물다. 인증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재능기부와 대를 잇는 농업명장 도전
이 대표는 귀농 후 농장경영이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사회로도 눈길을 돌린다. 작지만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기부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런 기부에는 물질뿐만이 아니라 재능까지도 포함된다.
예전에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질병으로 적기에 농사일을 못하는 농가가 있으면 말없이 논을 갈거나 써레질을 해주던 아버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요즘 이 대표가 부쩍 욕심을 부리는 것이 있다. 경북농업 명장에 선정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 농업 명장이 되는 것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