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 포도 재배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청년농부 ||도시청년의 야심 찬 농촌 이직,

▲ 정지홍 대표와 아내 박지연씨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 정지홍 대표와 아내 박지연씨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취업도 어렵고, 이직도 많은 세상이다. 직장은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다 보니 직장에 대한 기대도 크고 걱정도 많다. 많은 직장인이 ‘직장을 그만두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 ‘과연 제대로 먹고 살 수는 있을까’ 등의 고민을 한다.

▲ 정지홍 대표 부부가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윤광서 민간전문위원으로부터 샤인머스캣 후기 관리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 정지홍 대표 부부가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윤광서 민간전문위원으로부터 샤인머스캣 후기 관리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그동안 자신과 가족을 책임졌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트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따뜻한 방 안에서 찬바람이 부는 방 밖으로 나가는 일인 만큼 당연한 것이다. 그런 고민 끝에 더러는 체념하듯 이렇게 말한다. “하다가 안 되면 농사나 짓지 뭐….”

하지만 농사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귀농 역시 도시에서의 다른 직장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준비과정도 길고 준비할 일도 많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도 높다.

▲ 수확기를 앞두고 정지홍 대표 부부가 샤인머스캣의 당도를 측정해보고 있다. 당도가 18~22브릭스에 도달하면 수확해서 판매한다.
▲ 수확기를 앞두고 정지홍 대표 부부가 샤인머스캣의 당도를 측정해보고 있다. 당도가 18~22브릭스에 도달하면 수확해서 판매한다.
스물일곱 나이에 일찌감치 귀농해 농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청년 농부를 만났다. 영천시 화산면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연지포도농장’의 정지홍(34) 대표가 주인공이다. 정 대표는 6천270㎡의 포도 과수원에 샤인마스캣과 거봉을 재배해 연간 5천만여 원의 조수익을 올린다. 아직 높은 소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초보 청년농부 발걸음으로는 알찬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귀농이 아니라 이직

정 대표가 귀농한 것은 스물일곱의 청년시절이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서울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밤샘작업은 일상이었고 해외출장도 잦았다. 해외출장은 시차적응이 어려웠다.

▲ 정지홍 대표가 샤인머스캣 당도를 측정하는 모습.
▲ 정지홍 대표가 샤인머스캣 당도를 측정하는 모습.
이것은 건강문제로 연결됐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해외지사 근무를 원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간 해외근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 정지홍 대표가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살펴보고 있다.
▲ 정지홍 대표가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살펴보고 있다.
당시 퇴직을 앞둔 아버지가 정 대표의 고민을 알아차리고 함께 귀농할 것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평생 농업관련 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농촌과 농업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현장 경험이 부족했다. 하지만 둘이 힘을 모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어머니도 온갖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봐왔기에 쉽게 동의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의논하다가 고향인 울산과 가까운 영천으로 2013년 귀농했다.

▲ 박지연씨가 잘 익어가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살펴보고 있다.
▲ 박지연씨가 잘 익어가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살펴보고 있다.
아버지는 귀농이라고 하고, 아들인 정 대표는 이직이라고 했다. 단지 직장을 농촌으로 옮겼고, 직업을 컴퓨터 프로그래머에서 농부로 바꿨을 뿐이라고 했다.

◆포도를 만나다.

귀농 후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작목 선택이었다. 농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그저 막막했지만 정석을 따랐다.

▲ 박지연씨가 잘 익어가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살펴보고 있다.
▲ 박지연씨가 잘 익어가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살펴보고 있다.
작목 선택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지만 첫째는 그 지역의 특화작목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역 내 기술력과 유통망은 물론 다양한 지원시책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고수들이 수두룩하고 판로개척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초보 농사꾼이 겪는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정 대표도 포도를 선택했다.

▲ 정지홍 대표 부부가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윤광서 민간전문위원으로부터 샤인머스캣 포도 특징과 관리방법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 정지홍 대표 부부가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윤광서 민간전문위원으로부터 샤인머스캣 포도 특징과 관리방법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마침 인근에 포도재배 1인자로 불리는 친구의 고모부가 있어서 품종 선택과 재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포도농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생산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판매에도 다양한 마케팅을 동원하고 있다.

2018년에 샤인머스캣 50상자(100㎏)를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에 시식용으로 보냈다.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해 400상자 주문으로 이어졌다. 품질과 입소문을 연계한 마케팅 성과였다.

▲ 정지홍 대표가 함께 일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잘 익은 거봉포도를 먹여주고 있는 모습.
▲ 정지홍 대표가 함께 일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잘 익은 거봉포도를 먹여주고 있는 모습.
현재는 80%를 유통센터에 납품을 한다. 나머지 20%만 직거래 판매를 하는 데 앞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친환경재배에 한 발짝 가까이

포도를 재배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토양검정이었다. 땅과 작물의 특성을 알아야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 정지홍 대표와 아내 박지연씨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 거봉 포도송이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 정지홍 대표와 아내 박지연씨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 거봉 포도송이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토양의 산도(PH)를 교정하고 화학비료를 줄였다. 대신에 직접 제조한 퇴비를 이용해 토양을 개량해 나갔다. 포도 재배에 적합한 토양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또 생선부산물과 골분 부엽토를 이용한 친환경 액비를 만들어 뿌렸다.

▲ 정지홍 대표가 거봉포도를 수확하기 직전에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 정지홍 대표가 거봉포도를 수확하기 직전에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액비는 1년 이상 숙성시켜 사용한다. 여유가 있을 때 저수지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도 액비 원료가 된다. 이런 노력이 화학비료의 양을 줄였다. 힘은 들지만 초생재배를 하기 때문에 제초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초생재배용으로 재배하는 호밀과 잡초도 좋은 천연비료가 된다. 그 땅에서 나는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 한창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
▲ 한창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
병해충 방제를 위한 농약도 친환경 농약을 80% 이상 사용한다. 아직 완전한 친환경 재배는 아니지만 농약 사용을 최소화해 나가고 있다.

◆샤인머스캣은 어떤 포도인가

정 대표는 샤인머스캣과 거봉 포도를 재배한다. 주력 품종은 샤인머스캣이다. 최근 가장 핫한 품종이다. 일본에서 육종한 청포도의 일종이다. 식감이 아삭하고 당도가 18~20브릭스로 높다. 단맛과 함께 달콤하고 상큼한 향이 있어 망고포도로도 불린다.

▲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 샤인머스캣은 작은 송이일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봉지를 씌워서 재배한다.
▲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 샤인머스캣은 작은 송이일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봉지를 씌워서 재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저장성이 높고, 판매가격이 좋아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재배 면적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포도 주산지인 영천과 김천, 상주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재배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 잘 익은 거봉포도 송이.
▲ 잘 익은 거봉포도 송이.
2018년 기준 1천674ha가량 재배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과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8월 하순에서 10월까지 수확한다. 지베렐린(성장촉진제) 처리를 하면 무핵 재배가 가능해 씨 없는 포도로도 불린다.

◆든든한 후원자

“든든한 후원자 덕분에 농장에 가면 힘이 납니다.”

그 후원자는 아버지와 아내다. 아버지는 정 대표를 농촌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함께 귀농해 포도 과수원을 만들고 키웠다. 농업기관 출신이라 농업에 대한 마인드가 남달라 지금까지 귀농 가이드 역할을 했다. 올 들어 농장경영에서 물러났다.

▲ 샤인머스캣 당도 측정 모습, 당도가 18.6브릭스로 수확을 앞두고 있다.
▲ 샤인머스캣 당도 측정 모습, 당도가 18.6브릭스로 수확을 앞두고 있다.
정 대표가 농장을 경영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옆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짓고 깻잎농사를 지으면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아내인 박지연(31)씨도 열성 후원자다. 또 장인과 장모님도 현재 누구보다도 정 대표를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지금은 농장에서 일하는 것도 즐겁고,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다고 한다. 특히 식단이 인스턴트식품 위주에서 자연식단으로 바뀌면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남들이 농촌으로 시집간다고 걱정했지만 제게는 그것이 행복으로 다가왔다”면서 “이 기분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알찬 농장을 만들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지역사회에 작은 보탬 되고 싶어

정 대표는 자신이 농촌에서 어렵지 않게 정착한 것은 이웃들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자신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윤광서 민간전문위원이 정 대표에게 포도 당도 측정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윤광서 민간전문위원이 정 대표에게 포도 당도 측정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잡코리아’에서 지방취업 의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거주 구직자 70.4%가 지방에 있는 기업에 취업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청년들에게 귀농과 창농(농업창업)도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했다.

또 부인인 지연씨도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특기를 살려 지역에 기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상담을 통해 농촌지역에 내재된 세대 간 갈등과 다문화 정착, 농작업 스트레스 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복안이다.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드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다.

열정을 가진 청년농부의 모습을 볼 때 같은 세대의 농촌 진출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농촌이 청년들의 새로운 일자리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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