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천영애의 영화산책…봉준호 감독 ‘기생충’

가난과 부유함의 이중성이 나를 부끄럽게 하고

시인 천영애
인간의 욕망이란 사자가 먹이를 뜯어먹는 것처럼 잔인하다. 그러므로 욕망이 아름다운 경우는 없다. 욕망을 향해 달려드는 인간을 보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는 말이 있지만 어떨 때는 짐승보다 더 교활하다. 그래서 많은 선인들이 욕망을 버리라고 설파하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내 속의 욕망이 가감없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부끄러운가. 평소에는 두꺼운 살갗 속에 감추었던 욕망이 영화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부정과 긍정의 심리 속에서 결국 불편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틀 속에 갇혀 지내다 보면 이웃을 보기가 어렵다. 끼리끼리 사는 습성 때문에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빈자는 빈자끼리 어울리다보면 상대의 삶을 잊기가 쉽다.

우리나라에 저렇게 가난한 사람도 있냐는 질문은 그래서 나온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어이없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사람은 그 상황에 처하면 거의 대부분은 그렇게 된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영화가 불편하다. 나 역시 그 상황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없네요”라는 부유한 집 여주인의 말이 올해의 지독한 장마를 보면서 가끔 떠올랐다. 켜놓은 TV에서는 섬진강이 범람하여 하동을 물바다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 달 넘게 비가 내렸지만 막상 나가보면 물이 없었다. 비는 내릴 때마다 시설이 잘 갖추어진 하수구로 흘러들어 그냥 지루하게 비가 내린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러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집이 떠내려가고 소들이 떠내려가고 물이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사람이 죽고 새끼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짐승들의 이야기가 가십으로 자주 나왔다.

그리고 비가 멈추고 그런 뉴스가 TV에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잊혀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의 이야기처럼.

가난한 동네를 지날 때면 문득문득 그들의 삶이 엿보인다. 나도 한때는 살던 동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시절을 지나오면서 그런 동네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동네는 평소에는 잊고 산다. 먼 남의 동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어떤 사람은 미세 먼지가 없다고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집이 물에 잠긴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생충은 누구를 일컬음일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대로 누군가에 기생하며 살아간다.

92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면서 화제가 되었던 이 작품은 곧이어 세자르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봉준호라는 이름이 고유명사처럼 불리어질 무렵 안타깝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묻히게 되었지만 우리나라 영화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끔 한 스크린에서 그렇게 동시에 나오던 가난과 부유함의 이중성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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