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북한의 압록강이나 두만강, 청천강 인근 지역에서는 떼몰이라고 하는 독특한 목재 운송 방법이 있다. 벌목한 통나무를 강 인근으로 옮기고 커다란 뗏목으로 엮은 후 여기에 올라타고 물살을 따라 강 아래쪽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예전에는 한강 유역에서도 이 같은 방법으로 태백산맥의 품질 좋은 목재들을 한양으로 보내곤 했다.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도 벌목공들은 벌목한 통나무를 강물로 운송한다. 운송이라기보다는 하류의 제재소까지 강물에 흘려보낸다는 표현이 맞겠다. 수백개의 통나무들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강폭이 좁아지는 지점에 이르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빨라지는 유속에 통나무들이 서로 엉키게 된다. 병목현상이다. 이를 로그 잼(log jam)이라고 한다. 강을 따라 떠내려 오던 통나무가 한곳에 몰려 물길이 막힌 것이다.

로그 잼이 일어나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수백 개의 통나무를 하나하나 떼어내어 흘려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련한 벌목공은 이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행동한다. 큰 망치를 하나 들고 나무 사이를 다니며 핵심적인 통나무 하나를 찾아낸다. 그러고선 이 통나무를 망치로 세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 통나무 하나가 움직이면서 얽힌 나무들이 술술 풀리고 다시 떠내려가게 된다. 로그 잼을 일으킨 핵심인 이 통나무를 ‘킹핀’(Kingpin)이라고 부른다.

킹핀은 볼링경기에서도 흔히 쓰이는 용어다. 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치기 위해선 맨 앞의 1번 핀을 맞추는 것보다 세 번째 줄 중앙의 5번 핀을 쓰러트리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에 숨어있는 5번 핀을 공략해야 주변의 다른 핀들을 연쇄적으로 쓰러트릴 수 있어서다. 그래서 이 5번 핀을 ‘킹핀’이라고 한다. 스트라이크를 칠 수 있는 핵심 핀이라는 뜻이다.

결국 킹핀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요소를 말한다.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핵심 사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킹핀을 해결하면 나머지는 별 어려움 없이 모두 풀려나가기 마련이다.

요즘 우리사회가 꽉 막혀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제마저 멈춰 국민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코로나19의 킹핀은 누가 뭐래도 백신이다. 하지만 이마저 언제 본격적으로 시판이 될지 아직까지는 오리무중이다.

답답한 구석이 어디 코로나19 뿐인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도 가슴이 미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사회 어디 속 시원한 곳이 있는가. 여기도 로그 잼이고 저기도 로그 잼이다. 요즘 들어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려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괜한 정치 이야기는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몰아가게 되고 결국 서로 얼굴마저 붉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어쩌다가 정치가 국민들 간 소통에서마저 로그 잼이 됐는지….

경제를 둘러보면 답답한 상황은 더하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를 13일까지 연장하면서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방역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애써 이해하면서도 왜 소상공인들만 죽어 나가야하는지 한숨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차례 쇼크를 받은 상태에서 연이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그로기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킹핀을 정확하게 겨냥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매번 눈앞에 확 드러나는 1번 핀을 겨냥하고 공을 굴린다. 숨어있는 5번 핀은 건드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대책마다 헛발질이다. 두 달이 멀다하고 내놓은 부동산대책에도 성과는 도통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풍선효과만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묻혀버렸지만 일자리대책도 성과를 못내고 있다. 일자리대책의 킹핀은 공공부문의 ‘알바’를 늘리는 게 아니라 기업의 투자활성화 아닌가.

얽히고설킨 문제를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핀 후 킹핀인 통나무를 내리쳐 로그 잼을 해결하는 노련한 벌목공이 없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1번 핀이 급해 보이니 우선 이를 쓰러트리겠다는 생각뿐이다. 킹핀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데서 힘을 빼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수많은 로그 잼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게 킹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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