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경이의 눈동자로// 처음 위내시경의 핸들을 잡던 날/ 창밖엔 첫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떨리던 두 손과 마음을 다잡으며/ “태고의 신비”를 찾아 동굴 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받던 그 환자의 위장은/ 단 한 번도 빛이 닿지 않은 공동이었습니다.// 내시경 검사, 요즈음 나에겐 일상이 된 동굴 탐사입니다./ 환자의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아는 순간/ 내 눈동자는 두 배로 키워지고, 마우스피스가 물린 입구를 지나/ 조심조심 암흑의 통로로 헤드램프를 비추며/ 미지의 동굴에 도착합니다.// 병소를 놓칠세라 순간순간 긴장하며/ 처녀성을 뒤지듯 샅샅이 환자의 속을 들여다봅니다./ 종유석이라 이름 지은 용종이 보입니다.// 벽면에는 곧 악마의 숨소리가 들릴 〈장상피화생〉이 보이기도 합니다./ 까칠해진 천정과 위축된 바닥, 물기 흐르는 통로,/ 동굴의 벽이 울리며 구역질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속을 훤히 다 보았지만, 아직 환자의 속마음만은 알 길이 없습니다.// 첫눈이 내린 이른 아침/ 병변을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그 할아버지가/ 천수를 다하시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달 표면에서 시료를 채취하던 〈닐 암스트롱〉이 되어/ 내시경 집게로 검사조직을 잘라 담으며,/ 어두운 거리에 촛불을 밝히는 마음으로/ 희망의 동굴에 조용히 사랑과 생명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대구문협대표작선집」 (대구문인협회, 2013)

평균수명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건 일상화된 건강검진 덕택이고, 일상화된 건강검진은 잘 정착된 의료보험 덕분이다. 건강검진에서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내시경이다. 내시경은 보통 위장과 대장을 대상으로 하지만 위내시경이 보편적이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에 피검자는 묘한 긴장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프로포폴이 몸에 해롭다고 수면내시경을 거부하고 일반내시경을 선택하는 사람은 예외적인 케이스다.

대부분 환자의 입장에서 위내시경을 이야기하지만 ‘동굴 탐사’는 의사의 입장에서 그 경험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래서 참신하다. 처음은 무엇이든지 새롭고 가슴 설렌다. 처음 위내시경 시술을 하던 날이 생생하다. “태고의 신비”를 찾아 떠나는 동굴 탐사다. 직접 살아있는 사람의 내장을 눈으로 들어다본 일은 확실히 놀라운 이벤트다. 지금은 일반화된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지만 처음엔 호기심과 기대로 무척 긴장했을 터다.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에 투철한 의사가 행여나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살피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동굴의 종유석에 해당하는 용종, 위 점막이 장 점막처럼 바뀐 ‘장상피화생’ 등을 알뜰살뜰 찾아낸다. 사람의 속을 훤히 다 봤지만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도 안 되는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 찍어보거나 갈라보면 몸의 구조와 성분을 알아내고 때론 병을 고칠 수도 있지만 마음은 찍을 수도 없고 해부할 수도 없어 그 실체를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눈으로 확인되는 몸의 상호작용에 터 잡아, 제어되지 않은 채 부단히 일어나는 오묘한 정신작용이 신비롭다.

위중한 환자의 병변을 조기에 발견해 목숨을 구한 일은 성실한 마음가짐과 빈틈없는 관찰이 낳은 당연한 성과다. 인류의 새 역사를 창조한다는 사명을 안고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던 ‘닐 암스트롱’의 마음가짐으로 인술을 베푸는 의사 시인은 어두운 동굴에서 사랑의 횃불을 비추는 등불이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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