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이 생각 날 땐 영양고추를 찾으세요||고추장, 니가 왜? 승정원일기에서 나와!

▲ 정광춘 공동대표가 수확한 고추를 세척기를 이용해 세척작업을 하는 모습. 고추가 세척기를 통과하는 과정에 고압 수돗물을 분사해 세척한다.
▲ 정광춘 공동대표가 수확한 고추를 세척기를 이용해 세척작업을 하는 모습. 고추가 세척기를 통과하는 과정에 고압 수돗물을 분사해 세척한다.
조선 27대 임금인 영조는 특별한 이력이 많다. 83세로 최고로 장수했고, 52년간 최장기간 재위했다. 7천284회에 걸친 문안진후(건강검진)를 받았고, 500회를 넘는 미행(微行)을 했다. 83세로 장수한 데에는 이런 이력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권재경 공동대표가 세척기를 통과해 깨끗이 세척된 고추를 상자에 담고 있다.
▲ 권재경 공동대표가 세척기를 통과해 깨끗이 세척된 고추를 상자에 담고 있다.
식습관에 있어서도 특별했다. 특히 고추장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승정원일기에도 고추장에 대한 이야기가 22번이나 나온다. 영조는 “나는 고추장을 잘 먹는다. 예전에도 고추장이 있었다면 분명히 먹었을 것이다”고 할 정도로 고추장을 좋아했다.

▲ 정광춘 공동대표와 이준화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이 고추 세척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정광춘 공동대표와 이준화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이 고추 세척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고추장 마니아였다. 영조가 좋아했던 고추장은 어디서 재배한 고추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 영양…. 영양에서 고추를 재배하는 ‘감천이네 동천농장(이하 동천농장)’의 정광춘(67)·권재경(65) 공동대표를 만나본다. 부부는 2만6천여㎡ 부지에 고추를 재배하는 강소농이다.

◆초보농부 농촌정착기

서울에서 건축업을 운영하던 정 대표는 11년 전 귀농을 했다. 잘 나가던 사업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으면서 자금압박과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재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재투자를 강행했다. 무리한 투자가 화를 불렀다.

▲ 고추 자동세척기를 통과하여 나오는 마지막 세척공정 모습.
▲ 고추 자동세척기를 통과하여 나오는 마지막 세척공정 모습.
동업자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건축업을 중단했다. 평생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조용한 곳에서 좀 쉬자는 생각으로 땅값이 싸다는 말만 듣고 영양으로 왔다. 무작정 마을회관을 찾아가 매물로 나온 땅이 있는지 물어보고 골짜기 양지쪽 밭을 매입했다.

▲ 정광춘 공동대표가 깨끗이 세척한 고추를 상자에 담아 건조장으로 보내기 전에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 정광춘 공동대표가 깨끗이 세척한 고추를 상자에 담아 건조장으로 보내기 전에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농사를 전혀 몰랐기에 농사짓기 좋은 땅이 아니라 경치 좋은 땅을 샀다. 농사를 지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2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웃에서 고추농사를 지어 보라는 권유를 받고 농사를 시작했다.

▲ 정광춘·권재경 공동대표가 세척작업을 마친 고추를 살펴보고 있다.
▲ 정광춘·권재경 공동대표가 세척작업을 마친 고추를 살펴보고 있다.
경치만 보고 샀던 땅은 농사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동안 농사기술을 배우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이제는 농부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스스로 걸음마는 뗐다고 한다.

◆일머리를 모르는 농부의 고생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농사일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방법과 순서를 알면 쉽다. 이걸 일머리라고 한다. 초보 농부는 일머리를 몰라 힘만으로 일을 하다 보니 힘은 배로 들지만 성과는 반도 되지 않았다.

▲ 잘 익은 고추 모습.
▲ 잘 익은 고추 모습.
베테랑 농부들은 풀이 돋아나면 바로 괭이나 호미로 쓱쓱 긁어 없애지만 초보는 다 자란 뒤에야 베거나 뽑아내려고 한다. 베테랑이 반나절에 할 일을 초보는 2~3일이나 걸린다. 병해충도 예방을 하면 쉬운 것을 치료를 하려고 하니 몇 배의 힘을 들이고도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

▲ 한창 익어가고 있는 고추 모습.
▲ 한창 익어가고 있는 고추 모습.
그렇다고 일머리를 쉽게 터득하는 방법은 어렵다. 오랜 경험이 필수다. 정 대표는 해결방법을 교육에서 찾았다. 농업기술센터를 비롯한 많은 농업기관에서 실시하는 영농교육을 끊임없이 받고, 이웃 농가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터득했다. 아직 베테랑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하지만 상당한 수준은 되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 정광춘 공동대표와 이준화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이 고추 수확 적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정광춘 공동대표와 이준화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이 고추 수확 적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모종이 반농사

▲ 저온 건조 중인 고추.
▲ 저온 건조 중인 고추.
고추는 ‘모종농사가 반농사’라는 말처럼 모종이 튼튼해야 잘 자라고 병해충에도 강하다. 이것은 고품질과 다수확으로 연결된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던 70년대 어린이 영양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 세척을 마친 고추를 건조기에 넣은 모습.
▲ 세척을 마친 고추를 건조기에 넣은 모습.
정 대표는 튼튼한 모종을 ‘초란액’에서 해답을 찾았다. 사과식초에 유정란을 넣고 1년간 숙성을 시키면 액체 상태로 된다. 이걸 희석해서 모종에 2회 뿌리고 본 포장에서 2회 관주를 한다. 고추의 마디가 짧아지고 줄기가 단단해 병해충에 강해진다. 고추도 많이 달린다.

▲ 잘 익어가고 있는 고추 모습.
▲ 잘 익어가고 있는 고추 모습.
달걀껍질의 칼슘성분을 고추에 공급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종을 튼튼하게 키운 것은 아니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모종판은 보온관리가 최고라는 말만 듣고 보온에만 신경을 쓰다가 고추 묘를 삶아버리기도 했다.

▲ 잘 익어가고 있는 고추 모습.
▲ 잘 익어가고 있는 고추 모습.
당시에는 ‘삶았다’는 말의 의미도 몰랐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재 파종을 했으나 약한 모종은 쓰러지고 역병까지 번져 한 해 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 저온 건조 중인 고추.
▲ 저온 건조 중인 고추.
◆안심 농산물은 고객에 대한 도리

▲ 세척을 마친 고추 모습.
▲ 세척을 마친 고추 모습.
▲ 농장에서 직접 만들고 있는 초란액, 1년간 숙성시키면 액체 상태로 변한다.
▲ 농장에서 직접 만들고 있는 초란액, 1년간 숙성시키면 액체 상태로 변한다.
▲ 잘 익은 고추 속 모습.
▲ 잘 익은 고추 속 모습.
▲ 잘 익은 고추 속 모습.
▲ 잘 익은 고추 속 모습.












▲ 잘 익은 고추 모습.
▲ 잘 익은 고추 모습.






▲ 잘 익은 고추 모습.
▲ 잘 익은 고추 모습.
▲ 잘 익은 고추 모습.
▲ 잘 익은 고추 모습.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 생산은 고객에 대한 도리다”고 정 대표는 말한다. 안심 농산물 생산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도입했다. 일거리는 많아지지만 기꺼이 감수한다. 화학비료를 줄이고 퇴비를 늘린다.

▲ 고추 주산지임을 얼리는 영양고추 홍보판.
▲ 고추 주산지임을 얼리는 영양고추 홍보판.
자가제조 퇴비에는 미생물을 첨가해 완전히 부숙을 시킨다. 구입한 퇴비도 완전 부숙을 위해 1년간 보관했다가 뿌린다. 매년 고추를 판매하기 전에는 공인기관의 농약 안전성 검사를 받는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검은색 비닐로 멀칭을 하고 이랑에는 부직포를 덮지만 풀들을 막지는 못한다.

제초제를 뿌리면 한 번에 해결되지만 일일이 손으로 뽑거나 벤다. 예초기로 밭두렁의 풀을 베는 것은 여름철의 통상 일과다. 베어지는 풀의 량만큼 땀을 흘려야 만 주변이 깨끗해진다고 한다.

◆고추농사는 더위와의 싸움

고추는 8월의 땡볕 아래에서 수확한다. 고추밭에는 붉은 고추와 더위, 땀이 뒤엉켜 있다. 더울수록 고추는 활개를 치지만 수확하는 사람은 그 반대다. 지열로 달구어진 고추밭은 찜질방 같다. 큰 파라솔이 달린 의자에 앉아 고추를 수확하는 것도 강한 햇볕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 영양고추와 반딧불이를 형상화한 버스승강장 모습.
▲ 영양고추와 반딧불이를 형상화한 버스승강장 모습.
파라솔로 햇빛을 피해 보지만 흐르는 땀을 막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여름철 고추밭에서 일을 하면 금방 탈색이 되어 버린다. 10년 입을 옷이 고추밭에서는 2년을 넘기지 못한다. 햇볕과 열기로 땀이 범벅이 되기 때문이다.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얼음을 채운 물을 쉬지 않고 마신다. 일손 부족으로 외국인을 계절근로자로 고용했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마저도 어렵게 돼 고추 수확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살만한 세상

2017년 서울에서 열린 영양고추 핫 페스티벌에 참가해 건 고추를 판매했다. 오후가 되자 행사장이 술렁였다. 공판장의 고추가격이 1.5배나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 때문이다. 가격이 너무 올라 행사장에서 판매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 고추 수확 모습, 더위를 피하기 위해 파라솔이 달린 의자에 앉아서 수확한다.
▲ 고추 수확 모습, 더위를 피하기 위해 파라솔이 달린 의자에 앉아서 수확한다.
그대로 판매하면 손해가 크고, 판매를 중단하면 신뢰도가 추락한다. 일부 농가에서 철수를 주장했지만 주최 측 주선으로 가격을 일부 조정해 판매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더 큰 문제는 농산물 쇼핑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800근의 주문이 들어와 있었다. 직판행사에 참여하느라 가격을 조정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쏟아진 주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차액을 계산하니 너무 큰 금액이었다. 신뢰와 실리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다음날 권 대표가 모든 구매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시세와 주문 가격의 중간선으로 조정하고, 감사의 표시로 한 근을 더 보냈다.

그것을 계기로 단골고객이 더 늘어났다. 그 일을 겪으면서 부부는 ‘아직 우리 사회는 살맛이 나는 세상’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지역상생을 위한 유통 프로그램 구축

부부는 귀농 이후 고추농사에 몰두하다시피 했다. 덕분에 재배기술도 익혔다. 면적도 많이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일에만 매달렸고, 주변을 돌아 볼 여유도 없었다. 이제는 면적을 축소하고 남는 시간을 주변과 상생하는 일을 찾으려고 한다.

농산물의 유통과 마케팅을 공부해 지역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자신의 농산물뿐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농산물을 제값을 받고 판매해 주는 것이다. 고령화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도 있지만 중간 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모습을 늘 안타깝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유통마케팅과 홍보로 적정 가격이 보장되는 농산물 판매로 자신들을 받아준 지역에 작지만 보답하려는 것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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