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지난 주말 잠깐 비가 그친 틈을 타 전통시장에 들러 장을 봤다. 긴 장마 탓에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지 농산물 가격은 장마 전에 비해 훨씬 많이 올랐을 뿐 아니라 일부 품목들은 상태도 고르지 못한 것 같았다. 덕분에 장보기는 빨리 끝냈지만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틀리기를 바랄 뿐이지만, 역대 최장의 장마라는 기상청 예보가 적중한다면 당분간 만족스러운 장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살짝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럼 도대체 물가가 얼마나 올랐단 말인가? 사실 전국적으로 볼 때 소비자물가는 그렇게 많이 오르지 않았다. 아니 거의 바닥이라 해도 좋을 만한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비 침체 우려가 컸던 지난 5월에는 마이너스 0.3%까지 떨어졌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지난 7월에도 0.3% 정도 밖에 오르지 않았다. 공업제품 등을 포함해 일반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는 품목과 기본 생필품 141개 품목을 대상으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도 7월에야 겨우 플러스 0%를 기록했을 뿐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통계가 일반 소비자들이 느끼는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활물가지수를 구성하는 전체 식품물가는 4월 1%대 중반에서 7월 2%대 후반으로 상승했고, 이 가운데 장바구니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어패류,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 물가는 지난 7월 8% 이상, 농축수산물 전체로는 6% 이상 상승했다. 요즘 모 유명 인사가 기업 총수와 함께 수요 급감으로 힘들어 하는 농축어민들을 위해 싼 가격에 상품을 공급해 순식간에 완판시켰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는데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하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통계청이 발표하는 통계와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도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전체 소비자 중에는 이정도 물가 수준으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소수의 계층도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누구나 할 것없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장바구니물가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현명한 소비자들은 인터넷, 스마트폰, 홈쇼핑 등 코로나19로 주목받는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해 싸고 양질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윤택한 식탁을 꾸려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장바구니물가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고령의 연금생활자나 저소득층 등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장바구니물가가 조금만 상승해도 생계에 불안감을 느끼는 다수의 취약계층들도 존재한다.

경제 전반에 걸쳐 수요가 증가하면서 조금씩 안정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매우 좋은 신호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일자리와 소득 수준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식료품과 같은 생활필수품목의 물가 상승은 결국 서민층 이하 취약계층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길어진 장마 탓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장마가 그치면 곧바로 지금의 부담스러운 물가 수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장마가 그치고 피해 복구 작업이 끝나더라도 채소나 과일 등 신선식품 수급 불안정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가격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주택임대시장은 가을 이사철이 되면 또 얼마나 더 불안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으로 주거비가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상승하는 물가에 대한 부담도 커진다. 또 소득 감소든 세 부담 증가든 이유는 제 각각이지만 실질 소비여력이 줄어들어도 물가 상승의 부담이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긴 장마로 인한 물난리로 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해 이를 복구하는 것은 지금 당장에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고 이를 위해 예비비까지 동원하겠다는 것은 실로 바람직한 결정이다.

하지만 이 장마가 지나면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을 다수의 취약계층들이 있다는 사실과 이들이 흘릴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정책적인 배려가 없으면 내수 부진으로 조기 경기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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