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어떤 부정적인 현상이 생긴 까닭이나 원인을 이야기할 때 ‘탓’이라는 말을 쓴다.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에 쓰는 말이다. 반대되는 뜻의 ‘덕’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이야기한다. 탓은 좋지 않은 일, 부정적인 일에 쓰이고 덕은 결과가 좋은 일, 긍정적인 사안에 쓰이는 말이다.

요즘 우리사회에선 솔직하게 ‘내 탓’임을 인정하는 것보다 ‘네 탓’이라고 떠넘기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중에서도 정치판에서 네 탓 공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현안마다 드러나는 현상이라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특히 고위층에게서 이런 장면들이 너무 자주 나타나는 바람에 걱정이 더 되기도 한다.

최근의 부동산값 폭등, 특히 집값의 폭등을 두고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하고 있는 네 탓, 남 탓은 같은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일 정도로 지나친 듯하다. 현안마다 나오는 ‘전(前) 정부 탓’은 이제 식상해졌음에도 단골메뉴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그랬다. “부동산 폭등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간 누적된 부동산 부양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도 “수도권 집값은 박근혜 정부 후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그 원인은 2014년 말 새누리당이 주도해서 통과시킨 부동산3법”이라고 주장했다.

‘전 정부 탓’에는 장관들도 가세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4년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시장 상승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2014년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 이래로 부패 권력과 재벌이 유착해 땅장사를 하고 금융권을 끌어들였다”면서,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 국토부가 만든 게 아니다”라고 했다.

집값 폭등의 원인이 분명 현 정부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전 정부 탓이라는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집권 3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전 정부 탓만 하는 건 책임회피 아닌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면피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청와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연속되는 ‘아내 탓’을 보고 있으려니 씁쓸하다. 민정수석이 시세보다 수억 원 비싸게 집을 매물로 내놓은 이유를 묻자 청와대는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얼마에 팔아 달라는 걸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그 전의 민정수석은 사모펀드 투자 논란에 “재산 관리는 아내가 전담한다”고 했다.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건물 매입은 아내가 한 일”이라고 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사퇴하기도 했다.

수십억 원대의 아파트를 부동산 시장에 내놓거나 거액의 펀드 투자, 수십억 원 대의 건물을 매입하는 일에 부부가 상의조차 없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어떤 식으로라도 책임을 지려는 모습보다 곤란한 현 상황만 모면해보자는 것으로 보여 씁쓸하다.

며칠 전 온 나라가 오랜 장마로 물난리를 겪고 있을 때다. 이어진 장맛비와 북한의 댐 방류로 임진강의 수위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높아졌을 때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한 언론이 파주지역의 침수피해 주민을 인터뷰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이 주민의 콩밭 7천 평은 수확을 앞두고 모두 물에 잠겼고, 논 5천 평 중 3분의 2가량이 물에 잠겼다. 그런데도 정부를 탓하거나 지자체의 장마 대응 태세를 탓하지 않았다. “마음이 쓰라리지만 그저 하늘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내 탓이려니 하고 있어야죠.”

통보조차 하지 않고 댐의 수문을 연 북한을 탓하지도, 그런 상황을 보고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정부를 탓하지도 않았다. 하늘이 만든 상황조차 “내 탓이려니” 한다. 타들어가는 속이야 말할 수 없을 정도이겠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네 탓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는 정치인들보다 더 믿음직하다.

불현 듯 1990년대 초 승용차 뒷유리창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내 탓이오’ 스티커가 그리워진다. 3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스티커를 만들어 승용차 뒷유리창에 붙이고 싶다. ‘내 탓이오, 네 덕입니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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