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연못에서 고갤 묻고 울었습니다/ 당신도 그랬나요/ 하마 많이 아팠겠지요/ 물 위엔 붉은 꽃잎이/ 하염없이 떨어져요// 인연은 바람 같다 그렇게들 말하지만/ 이미 늦어 때늦어/ 말매미 울음소리/ 당신도 나의 자취도/ 하마 많이 스러졌겠지요

시조집 「파란, 만장」 (2020, 고요아침)

고성만 시인은 전북 부안 출생으로 201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파란, 만장」이 있다. 그의 첫 시조집은 신선한 시어 차용, 빈틈없는 구성력, 맺고 푸는 음보의 능수능란함이 눈길을 끈다. 시조의 본령인 단시조에 치중하고 있는 점도 바람직하다. 다양한 전개 방식을 통해 정형화를 탈피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점도 좋다. 그는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성찰과 자연친화적인 서정 세계, 무구한 사랑에 대한 탐구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파란, 만장」이 함유하고 있는 시 세계는 다채롭다. 폭과 깊이가 있다. 감각의 촉수가 섬세해 사물과 세계를 육화하는 기량이 남다르다. 또한 그의 시편은 그의 자애로운 품성처럼 촉촉이 젖어 있고,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명옥헌’을 보자. 읽는 동안 눈물이 저절로 맺힐 듯하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로 소쇄원의 중심건물인 광풍각과 동일한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호남 지방 정자의 전형이라고 한다.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 수도 있다.

담양의 명소 명옥헌에서 화자는 나직이 읊조린다. 나는 그 연못에서 고개를 묻고 울었다고. 고개를 묻고 울만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그랬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하마 많이 아팠을 것이라고. 그 아픔의 정도는 물 위에 붉은 꽃잎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것으로 넉넉히 헤아릴 수 있다. 인연은 바람 같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은 적이 있는 화자는 말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미 늦어 때늦어, 라는 수사를 통해 속 깊이 자탄한다.

말매미는 곤충강 노린재목 매미아목 매미과의 곤충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매미다. 가로수에서 무리를 지어 울며 밤에도 불빛이 있으면 합창을 하는데 울음소리는 무엇을 쏟아 붓듯 시끄럽게 운다. 시의 화자가 왜 말매미 울음소리를 제시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젠 세월이 많이 흘러 당신도 나의 자취도 하마 많이 스러졌겠지만 어찌 서로 마음 깊이 나눈 이야기들이 가실 길이 있을까, 하면서 배롱나무 꽃이 만개한 명옥헌과 더불어 기억 속에 생생히 새기고 있을 것만 같다.

시조집에서 읽은 작품 중에 인상 깊은 단시조로 ‘문득,’이 있다. 이별이라니 문득, 이 말을 들었을 때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라면서 마음에 자라나는 뼈 물결치는 메아리, 라고 맺고 있는 애절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 받으면 한순간 평온은 무너져 내리고 캄캄한 절망의 벽과 맞닥뜨리게 된다. 어쩌면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보다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인연의 끈이 종내 끊어지고야 만다면 어찌 쉬이 견디랴. 물결치는 메아리를 감당치 못하고 온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지도 모른다.

그의 시는 이처럼 아름답고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한 방울의 이슬 같은 슬픔이 우리 삶을 견인하는 힘이 될 수 있기에 슬픔조차 행복한 일이라고 말해도 되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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