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천영애의 영화산책…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 ‘우리 사이의 거대한 산’

열정이면서 사랑인 에로스

시인 천영애
사랑이라는 말은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강렬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젊은 날의 사랑이 열정 그 자체였다면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먼 거리를 찾아가야 드디어 사랑이라는 실체가 부옇게 드러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랑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할만한 특별한 삶이 잘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눈이 하얗게 쌓인 험준한 로키 산맥에서 조난당한 벤과 알렉스는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를 보는 도중에 가끔 저 둘 중 한 명이 없다면 저들은 살아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렇게 3주간 산속에 고립되어 마을을 찾아 내려오면서 둘에게는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고 서로를 위하는 사랑의 힘은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게 한다.

흑인이면서 아내와 사별한 의사 벤과 백인이면서 약혼자가 있는 알렉스는 도시로 돌아와 각자의 삶을 살지만 산에서의 강렬한 기억을 잊지 못해 다시 만난다.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거대한 산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흑인과 백인이라는 인종의 다름, 알렉스의 약혼자 등이 그들에게 산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3주간이었지만 평생과도 맞먹을 조난자로서의 그 시간은 서로를 믿지 않고 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었고 경험이었다.

도시로 돌아와 일상적인 도시의 삶을 살아가면서 둘 사이에 존재하는 산을 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쩌면 그 산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산이었다.

흑인과 백인이라는 인종적 다름과 편견, 약혼자가 있다는 것 등은 따지고 보면 사랑을 가로막아야 할 산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영화의 결말은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었지만 로키 산맥의 광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초라한 모습은 세계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게도 한다.

눈 덮인 산에서 인간 둘이 죽어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 속의 짐승이 먹이를 구하지 못해 죽어가듯이 인간도 그렇게 얼마든지 죽어갈 수 있는 존재이며, 인간은 산에 있는 그 많은 나무와 동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세계는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존재할 뿐이다.

깊이 있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감독 하니 아부 아사드는 이미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 ‘오마르’ 등으로 인정받는 세계적인 감독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이 영화 역시도 가볍게 보면 가벼운 영화이지만 각각의 장면들에 스치는 의미와 상징들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가벼운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이 영화의 전반을 흘러가다가 둘의 감정이 사랑으로 변하면서 영화는 좀 더 박진감 있게 진행된다. 상대로 인해 내가 살아야 한다는 감정보다 내가 희생되더라도 상대가 살아야 한다는 감정은 훨씬 생을 다채롭고 활기차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산이 없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수많은 관념과 편견으로 그 사랑이 가로막히기는 하나 사랑이 시작되면 그 모든 편견조차도 생의 의지로 변한다. 에로스가 사랑이면서 열정인 이유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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