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마음으로 읽기 外

피서지 한적한 그늘아래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면서 곁에 두고 읽을 만한 한 권의 에세이. 예술을 보는 안목을 넓혀주는 책에서부터 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의 에세이집이 서점가를 장식한다.

▲ 그림, 마음으로 읽기
▲ 그림, 마음으로 읽기
◆그림, 마음으로 읽기/이윤서 지음/깊은나무/160쪽/1만3천 원

예술을 감상할 때 우리는 보통 그 작품이 주는 첫 인상보다, 비평가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때가 있다.

내 느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느낌을 내가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란 내 마음과 동조하는 느낌을 받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 마음과 동조하는 그림을 찾았다면, 그 그림은 더 이상 그 작가의 그림도, 비평가의 그림도 아니다. ‘내’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내 그림을 찾아가는 에세이다.

이 책은 그림을 말하지만 그림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그림을 보는 법을 말해주는 묘한 책이다.

이 책에는 대표적인 14명의 화가가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말해줄 뿐 그들의 그림을 평론하지 않는다. 단순히 저자가 당시 그들의 그림을 봤을 때의 느낌과 당시 처한 상황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몬드리안의 그림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이 있을 것이다. 검은 직선으로 나누어진 구역이 붉은색 노란색이 단순하게 칠해져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뭔가 심오한 뜻이 있겠지’ 하고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가? 먼저 말했다가는 욕을 먹을 것 같고….

하지만 저자는 ‘편안한가’, ‘답답한가’, 단 두 가지만 묻는다.

몬드리안의 그림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정리를 좋아하든지, 정리가 필요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정리가 필요해서 몬드리안의 그림이 좋아졌다면, 그 그림은 이제 몬드리안의 그림이 아니라 ‘나’의 그림이 된 것이다.

그 느낌을 더 잘 느끼도록 도와주는 부분이 화가의 삶이다. 실제로 몬드리안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작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통제하지 못하는 자연을 싫어했고, 자연을 떠올리게 만드는 초록색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듣고 몬드리안의 그림을 본다면 내 마음과 같아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열네 명의 화가 이야기와 당시 저자가 겪고 있던 상황과 마음을 읽는다면 진짜 내 그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조안나 지음/지금이책/204쪽/1만3천 원

‘월요일의 문장들’의 조안나 작가가 글 쓰는 삶의 든든한 러닝메이트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그간 수 편의 독서에세이를 통해 한 권의 책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를 꾸준히 전해온 작가가 이번 신작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에서는 독서와는 또 다른, 글 쓰는 삶으로서의 일상을 직조해가는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냈다.

“외로울 때나 슬플 때나 곁에 있어 주는 건 내가 지켜낸 글들을 위한 시간이었다”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이 책은 아내, 엄마, 주부라는 변화된 삶의 기반 위에 서서 읽고 쓰는 작가로서의 일상을 쟁취하고자 노력한 내밀한 삶이 담긴 산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나를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책 속의 문장들을, 쓰지 않으면 먼지처럼 사라질 지금의 시간들을, 삶의 무질서함과 혼돈들을, 가슴속으로만 담아두기에 벅찬 감정들을 당장이라도 글로 옮기고 싶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일상의 불안과 회의로부터 자신을 치유하는 수단으로서, 삶의 에너지를 채워 넣는 반복적 행위로서 글쓰기의 매력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상기해주기 때문이다.

도리스 레싱, 마르그리트 뒤라스, 아니 에르노, 은희경, 박연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 수많은 작가의 작품과 문장, 글쓰기에 대한 그들의 빛나는 통찰도 페이지마다 펼쳐진다.

각 글의 마지막에 오는 ‘이 책에서 저 글로 가는 법’은 어떻게 독서가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가 조안나만의 특색 있는 팁인데, 어떻게 독서가 글쓰기로 이어지는지를 자연스럽게 안내해준다.

작가 조안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출판사에 들어갔고, 잘 팔리는 책이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퇴사해 프리랜서가 됐다. 읽기는 쓰기를 낳고, 다시 쓰기는 읽기를 낳아 꾸준히 책을 만들고 써 왔다.

육아에 지쳐 책을 읽지 못하는 날엔 일기라도 한 줄 쓰고 자기 위해 쉽게 잠들려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모여 이 책이 됐다.

▲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허유정/뜻밖/224쪽/1만3천800원

코로나19로 세상은 대혼란을 겪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지구는 건강해지고 있다.

관광객이 줄어든 베네치아의 운하는 맑아져 돌고래가 포착되고, 회색 안개 속에 갇혀 있던 파리의 에펠탑도 그림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에서는 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하늘이 맑아졌다. 그동안 인간이 얼마나 자연에 무지막지했는지 잠시 멈춰, 돌아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런 와중에 기후 환경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가 인간의 삶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코로나19에 비할 바가 아니다”고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국곰과 펭귄이 살 곳이 사라지고, 바다거북이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끼어 고통받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도 잠시 안타까운 감정이 들 뿐, 당장 플라스틱을 줄여야겠다고 마음을 먹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일상의 작은 노력을 담은 책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의 저자인 유정씨도 그랬다.

그녀는 마치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살아갔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인스턴트식품과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직장인 3년차가 되자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그때 일회용품이 가득한 집 안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싱크대 위에는 빈 햇반 그릇과 삼각김밥 비닐이 널려 있었고, 현관에는 배달 음식용기가 쌓여 통로를 막고 있었다.

일회용 컵에 뜨거운 물을 마시면 뭔가 알싸한 약품 냄새가 올라오는 듯 찝찝했지만, 텀블러나 머그잔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이후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추구하는 작가는 책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실천하며 얻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털어놓았다. 쓰레기 없이 장보기, 쓰레기 없이 커피 즐기기, 정수리가 센 여자의 샴푸바 찾기 같이 생활 속에서 재밌고 쉽게 할 수 있는 실천을 주로 담았다.

그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자신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고 고백한다. 밥솥이 있어도 햇반만 찾고, 그저 ‘나’만 보고 살던 그가 바다와 아마존을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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