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에 가면/ 거기 낭만이 있다/ 그 낭만을 주워 담아 와서/ 우리는 낭만을 열어간다// 수성못에 가면/ 거기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을 주워 담아 와서/ 우리는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수성못에 가면/ 거기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을 주워 담아 와서/ 우리는 추억을 노래한다// 수성못에 가면/ 거기 포근함이 있다/ 그 포근함을 주워 담아 와서/ 우리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포근함을 만끽한다

「수성문학」 (수성문인협회, 2020)

수성못은 대구의 핫 플레이스다. 대구라 하면 가마솥더위나 사과, 미인을 떠올리지만 사실 대구는 여러 가지로 만만찮은 도시다. 천년왕국 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그 외연의 한 자락이라는 점, 해방 후 근대화의 기수로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약 2만여년 전 구석기이래로 쭉 집단적으로 사람이 거주해온 유서 깊은 곳인 까닭에 어느 곳 하나 진한 역사가 숨 쉬고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수성못도 또한 마찬가지다.

수성못은 원래 웅덩이 정도였으나 일본 이주농민 ‘이즈사키 린타로’가 총독부 예산을 받아와 현재 규모의 저수지로 키웠다. 천수답이던 드넓은 수성벌이 전천후 옥답으로 변모하였다. 지금은 전국적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즈사키 린타로’는 비록 일본인이지만 대구사람이 기억해 줘도 좋을 선각자다. 그의 유언에 따라 못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쓴 묘소엔 고즈넉한 산 그림자만 쓸쓸하다.

수성못엔 낭만이 넘친다. 법니산이 지켜보는 호수엔 오리배가 유유히 떠가고 물속엔 팔뚝만한 잉어들이 어리광을 부린다. 둑길을 따라 흐르는 사람물결이 발길을 유혹한다. 마냥 그 뒤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버스킹이 벌어진다. 시간을 잊은 연인들이 그냥 엉덩이를 붙이고 나란히 앉는다. 가끔 보여주는 레이저 쇼는 덤이다. 낭만적인 분위기가 필요한 영화나 드라마를 찍어야 한다면 단연코 수성못에 가야 한다.

수성못엔 사랑이 흐른다. 운치 있고 호젓한 카페가 즐비하고, 그림 같은 연인들이 두 손을 마주잡고 호수의 일거수일투족을 하염없이 지켜본다. 둑길 펜스엔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며 굳게 채운 자물쇠가 연인들의 변치 않는 사랑의 염원을 눈으로 확인시켜준다. 또 사랑을 감추지 못한 연리지 부부가 호숫가에 수줍게 숨어있다. 어둠은 발그레한 얼굴을 살짝 가려주고, 사랑의 불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난다.

수성못엔 추억이 숨어있다. 여름엔 엄마 아빠랑 오리배를 타고 호수 안에 떠있는 조그만 섬에 상륙했다. 거기서 왜 아이스케키를 먹어야 했던지 모른다. 겨울엔 벙어리장갑을 끼고 친구와 스케이트를 탔다. 빙판 위에서 먹던 어묵은 기가 막혔다. 해맑은 여대생과 보트를 타며 보트미팅을 했던 일과 술에 취해 호기롭게 못에 뛰어들었던 일이 새록새록 깨어난다.

수성못엔 포근함이 있다. 무거운 삶의 더께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자 찾아오는 사람일지라도 호수는 따스한 마음으로 맞는다. 참을성 없고 불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뒤집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호수는 말없이 푸근하게 기다린다. 거칠고 험한 인생살이에 치여 쫓겨 다니다가 호숫가에 앉아 한가로이 노니는 물고기를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말갛게 빈다. 맥박마저 뒷짐을 진 채 게으름을 즐긴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그 귀천을 가리지 않고 포근한 가슴을 내어준다. 수성못에 가면 누구나 엄마 품속 같은 포근함을 만끽한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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