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천영애의 영화산책…이재규 감독 ‘역린’

정성을 다한다면 세상은 바뀐다

시인 천영애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말에는 어마어마한 역사와 의미가 숨어 있다. 끝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역린이 있는데 이 역린을 둘러싸고 정조를 죽여야 하는 자와 살아남아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의 운명이 엇갈린다.

정조는 살아남아 자신의 목을 가져오라는 광백을 죽이고 많은 아이들을 구하는데 그때 광백은 왕에게 죽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그러나 정조는 이 말을 가슴에 되새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된다.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아이들을 가두어 자신의 일에 이용하고 살인을 밥 먹듯이 즐기는 광백 하나 죽인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그런 작은 일 하나로 세상은 천천히 바뀌어 가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나비의 몸짓이 태풍이 되는 것과 같다.

역린, 왕의 목에 있는 비늘, 이 비늘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늘 나 하나 어찌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세상의 그릇된 관습과 제도에 타협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타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타협도 그 무엇도 아닌 잘못된 것과의 동조 내지는 협력일 뿐이다. 그런 삶의 태도는 변하는 세상을 더 더디게 한다.

세상을 향해 자신은 뒤주에서 죽어간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는 정조는 그것을 선언하는 순간 역린을 떼어냈다. 그리고 정조는 용서와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용서와 처벌에는 잘 한 일과 잘못된 일의 분별이 전제되어 있다.

변하면 생육된다. 변하지 않으면 생육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여 변화의 그늘 아래 서지 않으려 한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기만한 적은 없었는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면서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한 적은 없었는가. 많은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면서 신하의 옷을 입거나 나그네의 옷을 입는다. 그들은 한번도 사도세자의 아들로 살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 몸의 역린을 생각했다. 그 역린으로 나를 부정한 적은 없었을까. 나를 부정하면서 세상을 부정하지는 않았을까.

오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스스로를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세상은 바뀌어 간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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